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을 쓰기 전에 경제학 논문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인간의 열정을 주제로 책을 집필했다.
사실 경제뿐 아니라 정치 등 모든 사회과학을 망라하는 학문은 심리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놓고 갈수록 논란이 커지는 것은 한마디로 합리적 경제 심리를 역행하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주요국(39개국 기준) 중 세 번째로 길었다.
근로시간을 줄여 노동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선사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뜻은 고귀하다.
그러나 경제주체의 심리와 시장을 거스르는 강압적 정책으로는 선의를 최상의 결과로 도출해낼 수 없다.
주 52시간 근로제의 가장 큰 문제는 근로자 ‘선택권’ 박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 감소액은 종업원 300명 이상 기업이 7.9%(41만7000원), 중소기업(30~299명)은 12.3%(39만1000원) 이었다.
누군가는 수입 감소를 감내하고라도 자신의 여유시간을 갖기 바랄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들 학원비, 노부모 부양비 등 여러 이유로 인해 30만~40만 원을 벌충하기 위해 대리운전 등 부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내가 직장에서 충분히 벌 수 있는 급여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부 정책에 의해 강제 삭감되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고수하는 것은 이런 논리일 것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기업은 추가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의 채용이 늘면 고용률이 올라갈 것이다. 취업자가 늘어나면 전체 소득이 증가한다. 소득증가는 소비로 이어진다. 소비증가는 기업 수익 제고와 투자증가로 직결된다. 고로 경제는 성장한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기업은 선(善)하다’라는 전제조건하에 나오는 순진한 생각이다.
더욱이 정부는 최저임금을 지난 2년간 30%가량이나 끌어올렸다. 자영업자를 비롯해 기업들은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채용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시간당 임금 하위 10%와 상위 10% 격차는 3.58배로 지난해(3.75배)보다 소폭 감소했다. 그러나 월 임금총액 기준으로 보면 두 계층 간 격차는 5.39배로 지난해(5.04배)보다 확대됐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인건비 부담이 커진 사업주들이 종업원의 근로시간을 단축했기 때문이다.
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로봇과 인공지능(AI) 관련 기술이 단순 반복 노동력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만약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가 기존 편의점을 대체한다면 약 340만개의 매장 계산원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미국 전체 노동인구의 2.6%이며 미국 초ㆍ중ㆍ고 교사를 모두 합한 인원과 비슷한 규모라고 한다.
인간의 노동력 수요가 줄어드는 시대에 근로시간마저 정부가 제약한다면 기업으로서는 당연히 고용을 줄이는 합리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근로시간 단축의 핵심 조건으로 삼아 발전시켜 온 이유이기도 하다.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근무제 활용이 온전히 결합할 때 기업과 근로자는 상호 윈-윈 할 수 있다.
그 핵심은 생산수요에 맞는 탄력적 근로시간 편성 또는 근로자의 자율적인 업무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피고용인은 1일, 1주, 1개월의 업무 계획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회사업무와 여가를 계획적으로 활용하고 동시에 임금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기주도적인 근무시간을 짤 수 있도록 반드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진정한 ‘노동존중’은 시간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합당한 가치 부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