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국에 있는 동안 북한과 만나자고 16일 제안했다.
비건 대표는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핵 수석대표협의를 가진 뒤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비건 대표는 “북한의 카운터파트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겠다”며 “일을 할 때이고 완수하자. 우리는 여기에 있고 당신들은 우리를 어떻게 접촉할지를 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능력이 있다”면서 “그러나 미국 혼자서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비건 대표는 회견에서 북한이 제시한 ‘연말 데드라인’에 대해 “미국은 미북 정상의 합의사항을 실천한다는 목표에 있어 데드라인은 없다”면서 “우리가 기대한 만큼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건 대표는 이어 “대통령의 지시로 우리 팀은 북측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미국은 양측의 목표에 부합하는 균형 있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창의적이고 유연성 있는 해법들을 제안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북한이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한 도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을 염두에 둔 듯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날이 평화의 시대를 여는 날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도훈 본부장은 회견에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비건 대표는 외교와 대화를 통한 미국의 문제 해결 의지는 변함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협상이 재개되면 북한의 모든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비건 대표와 나는 이러한 한미 공동의 입장하에서 앞으로도 계속 빈틈없는 공조 체제를 유지하고 협력할 것”이라며 “중국과 일본, 러시아, 주변국과도 이러한 맥락에서 긴밀하게 소통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비건 대표는 회견 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다. 문 대통령은 비건 대표에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비건 대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비건 대표는 문 대통령 접견 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면담했다. 정 실장과 비건 대표는 현 상황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협상 진전을 위해 긴밀한 소통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문 대통령이 비건 대표를 만난 것은 지난해 9월 평양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동한 지 1년 3개월 만이다.
이날 문 대통령과 비건 대표의 대담은 양측의 만남만 공개한 뒤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됐다. 북한이 자체 설정한 연말 비핵화 협상 ‘데드 라인’을 앞둔 시점인 만큼 긴밀한 논의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오전 비건 대표가 언급한 ‘더 나은 길’이라는 표현은 북한이 말한 ‘새로운 길’에 대한 응답으로 풀이된다. 핵 협상 중단이나 핵 보유국 지위 강화가 아닌 ‘또 다른 길’을 찾자는 의미로 읽힌다. 관건은 ‘더 나은 길’에 대한 밑그림이 북한에 제대로 전달되느냐가 될 전망이다. 북측이 비건 대표의 직접 회동 제안에 반응을 보인다면 돌파구가 열릴 수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비건 대표는 17일 오후까지 한국에 머물 예정이다. 판문점 등에서 북측 인사와 만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