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용의 세금직설] 디지털세 논의, 한국도 남 일 아니다

입력 2019-12-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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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전 한국세무학회장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글로벌 디지털 회사인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유명 영화를 보고, 구글에서 유튜브를 보고, 페이스북에서 친구와 교류한다. 유료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료이고 광고를 봐주면 된다. 디지털 상품은 전 세계를 국경 없이 넘나들며 24시간 내내 서비스가 제공되는 특징이 있다. 디지털 회사는 글로벌 세계에서 수익을 창출하지만, 고정사업장(서버)이 있는 국가에서 세금을 내도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모델조세조약에 정해져 있다.

현재의 국제기준에 의하면 글로벌 디지털 회사를 두지 못한 많은 국가들은 엄청난 디지털 상품을 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징수할 수 없어 불만이 많다. 최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별도의 디지털세를 만들어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의 경우 글로벌 디지털 회사가 연간 수익 7억5000만 유로(약 9697억 원) 이상이고, 이 중 프랑스 내의 수익이 2500만 유로(약 323억 원)가 넘으면, 프랑스 내의 연간 매출액 중 3%를 디지털세로 부과하겠다고 했다. 이탈리아, 영국 등의 경우에도 광고, 클라우드,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디지털 회사에 프랑스와 유사하게 디지털세를 부과하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은 유럽연합(EU) 내에서 글로벌 디지털 회사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으나, 아일랜드 등 일부 국가의 반대로 중단된 바 있다. 이를 참지 못한 프랑스 등의 국가는 디지털세를 독자적으로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OECD에서도 디지털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디지털 산업에 막강한 경쟁력이 있는 미국은 반발하고 있다. 글로벌 기준을 벗어나 별도의 디지털세를 만드는 것은 미국의 디지털 회사를 차별대우하는 것으로 봤다. 미국은 프랑스에 와인 등 여러 제품에 대하여 관세보복을 하겠다고 나섰다.

글로벌 디지털 회사들은 지금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조세 절감을 추구해 왔다. 법인세가 가장 낮은 국가에 고정사업장(서버)를 설치하고, 디지털 상품을 이용하는 국가에는 판매지원 법인을 통해 매출을 늘리는 마케팅 활동을 해왔다. 이를 통해 고정사업장(서버)이 있는 저세율 국가에서 세금을 내고, 디지털 상품을 이용하는 다른 국가에는 판매지원 법인의 수수료 용역대가(매출액 중 일부)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는 방법으로 조세절감 전략을 운영해 왔다.

이제 디지털세는 글로벌 과제가 되었다. OECD에서는 디지털세의 도입과 관련하여 각국에 의견 조회 중이며, 내년에는 의견을 정리할 계획이다. 핵심 내용은 글로벌 디지털 회사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 일정 조건에 따라 계산하여 초과분에 대해서는 각 국가가 나누어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최저한세의 도입도 논의 중이다.

OECD 논의 과제에는 휴대폰, 가전제품, 자동차 등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에 대해서도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도 디지털세를 내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기업과 정부의 세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구글과 같은 글로벌 디지털 회사가 없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내는 것보다 우리 정부가 국내에서 걷는 디지털세가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휴대폰, 가전제품, 자동차 등의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상 이와 반대되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즉 삼성전자 등에 대해 디지털세를 부과하게 된다면, 우리나라에 비해 다른 나라의 세율이 높은 경우에는 오히려 기업의 세금 총액이 늘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가 재정의 세수도 줄어들 개연성이 매우 높다.

디지털세의 도입은 국제적으로 시급한 과제일 뿐만 아니라, 조세원칙에 있어서도 소득원천지국과세에서 소비지국과세로 변경되는 큰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디지털세는 향후 우리나라의 기업 세금과 국가재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기업 및 정부는 디지털세 도입과 관련한 국제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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