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가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국가적 과제로 자리매김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 복지국가의 역할과 여지에 대해 짚어봐야 한다. 자율주행차는 어린이나 장애인, 노인과 같은 교통약자의 이동권과 교통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고 일상생활의 편의와 효율에 혁신을 가져와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차량 소유와 보험시장 수요가 획기적으로 감소하고, 택시, 화물차, 택배, 버스와 대리운전 등 운수업 일자리가 대량으로 감축되는 등 경제 전반에 걸쳐 근원적인 파장이 예상된다.
이 시점에서 복지국가의 역할은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고통을 겪지 않도록 최대한 충격을 완화하는 것, 동시에 심각한 이해 갈등이 불거져 혁신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조정해내는 일이다. 칼 폴라니는 자신의 저서 ‘거대한 전환’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인간이 주체가 되는 ‘사회적 힘’을 통해 경제체제의 급격한 변화가 공동체에 미치는 파괴적인 충격을 완화시킬 여지가 존재해왔다고.
이는 어떻게 가능한가. 최근 택시업계와 타다 간의 이해 갈등과 조정 과정을 보며 우리 사회의 이해 갈등이 지나치게 심각하고 갈등해결 능력은 형편없음에 실망한 이들이 많은 현실에서 말이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벼랑 끝에서 더 강경하고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이때는 필연적으로 한쪽이 패배하는 생존을 건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되고 만다. 변화의 방향과 속도가 정해졌다면, 복지국가의 조정 능력은 변화에 대비하고 조정할 시간을 얼마나 충분히 확보하느냐에 달리게 된다. 또한 당장 코앞의 이해관계 조정이 아니라 5년, 10년 후 미래를 위해 협상할 때, 상생의 이해관계 균형을 위한 정치적 협상 공간은 커진다.
1920년대 유럽에서 가장 많은 파업일수를 기록하며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스웨덴의 노사관계가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을 통해 상생의 관계로 거듭나며 노동쟁의 건수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산업 평화를 얻기까지, 정부가 사람 중심 경제라는 균형감 속에 끈질기게 이어간 5년간의 수많은 토론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역사상 변화에 발맞춰 산업의 합리적 조정이 필요했던 경우는 결코 적지 않았다. 이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복지국가 전략을 응용하면, 혁신 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되 일정 기간 적절한 세금을 부과해 기존 산업이 약간의 가격경쟁력을 통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하는 동시에, 그 재원을 통해 기존 산업 종사자들이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산업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실용화를 위해 꼭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이슈가 더 있다. 자율주행차가 인지, 판단, 제어하게 하는 알고리즘 설계 시 부여해야 할 합리적인 윤리적 기준이 그것이다. 사고를 피하기 위한 판단이 필요한 트롤리 딜레마의 상황에서, 자율주행차가 누구를 살리도록 설계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고 정의로울까? 이 까다롭고 난처한 질문에 대해 2017년 독일 정부가 세계 최초로 발표한 자율주행차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은 좋은 참고가 된다. 독일은 인간의 생명 중에 선택해야 하는 진정한 딜레마 결정에 대해서는, 기술시스템이 대신 평가를 내려 인간 운전자의 책임 있는 도덕적 판단을 대체하면 안 된다고 선언한다. 또한 피할 수 없는 사고에서 나이, 성별, 물리적·정신적 차이와 같은 개인적 특성을 기반으로 어떠한 차별적 판단이나 타인의 희생이 제안되어서는 안 된다는 금지 조항도 제시한다. 독일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기술 발전에도 흔들림없는 인간 중심의 철학에 기반한 정의를 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끝없는 윤리 논쟁에 분명한 선을 그음으로써 자율주행차 산업 발전에도 기여한다.
한국 복지국가의 ‘거대한 전환’이 예고되고 우리에게 변화의 충격에 대비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달려가는 변화 속에서도, 정치와 종교 등 모든 부문이 상호 작용해 인간이 주역이 되는 ‘사회의 힘’을 발휘함으로써 자율주행차 시대를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