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 의혹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행정제재 처분을 받은 것에 반발해 낸 본안 소송이 시작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박성규 부장판사)는 15일 삼성바이오가 금융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제재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의 첫 변론을 진행했다. 이날 변론은 지난해 5월 예정됐던 첫 기일이 연기된 후 소송이 접수된 지 1년 2개월여 만에 재개됐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 과정에 대해 고의적인 분식회계를 의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삼성바이오가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전환하면서 이 회사의 지분가치를 장부가액(2900억 원)에서 시장가액(4조8000억 원)으로 바꾼 것이 뚜렷한 근거 없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증선위는 이를 근거로 2018년 7월 삼성바이오에 △대표이사와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3년 등의 처분(1차 제재)을 내렸다. 이어 11월에도 △과징금 80억 원을 부과 △대표이사 해임 권고 △재무제표 재작성 등의 처분(2차 제재)을 추가로 내렸다.
이에 삼성바이오는 증선위를 상대로 시정요구 등 취소소송을 냈다. 삼성바이오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모든 회계처리를 적법하게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에피스의 지분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바이오젠이 콜옵션(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그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은 이날 재판에서도 이어졌다.
삼성바이오 측 소송대리인은 “일반적인 회계부정 사건이 아닌 삼성바이오의 자회사(에피스) 가치가 증가함에 따라 회계기준에 부합하게 처리한 것이다”며 “이와 관련한 내용도 공시했기 때문에 회계부정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증선위 측은 “이 사건은 바이오젠이 가지고 있는 콜옵션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쟁점이다”며 “바이오젠이 50%-1주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어느 한 회사가 단독 지배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공동 지배로 봐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형사 사건과는 별개로 심리를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진행 경과를 보면 삼성바이오 측에서 회계 조작을 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이 회계 처리가 적법한지 아닌지가 쟁점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에서 회계부정을 당연한 전제로 기사를 내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며 “그 과정에서의 문제 되는 행위와 회계처리가 적법한지 부정한 건지는 관점이 다르므로 이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 측은 재판부에 문서 제출명령 신청도 했다. 삼성바이오는 “어떤 회계기준에 대한 견해로 행정제재 처분을 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며 “중대한 권리 의무 책임 처분서를 받았는데 처분서의 내용을 보더라도 사실관계에 대한 근거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증선위 측에 회계법인에 대한 문서, 금융감독원의 감리결과 보고 및 처리안, 처분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들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지난해 삼성바이오는 증선위를 상대로 1ㆍ2차 제재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해 승소했다.
하급심은 모두 “증선위 제재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반면, 제재 효력을 중단한다고 해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는 적다”며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증선위가 이 판단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했지만, 대법원도 지난해 9월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