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부터 라임 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까지. 뼈아픈 경험을 겪고도 왜 금융사고가 거듭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 법조전문가가 내놓은 답변이다. 수년 전 카드사 정보유출과 KT ENS 부실대출 때도 금융사들은 비상한 각오와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CEO 인식은 여전히 사고 이전에 머물러 있다.
치매 노인의 종잣돈과 파출부의 전 재산을 빼앗아간 이번 DLF 사태는 그 세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금융감독원이 DLF 계좌 3954개를 전수 점검했더니 서류상 하자가 발견돼 불완전판매로 볼 수 있는 의심 사례가 5건당 1건(약 20%)꼴에 달했다.
은행들이 고객 재산이 아닌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얘기다. 일이 터지기 몇 달 전 일선 프라이빗 뱅커(PB)들이 손실 위험을 경영진에 알렸지만, 비이자 수익 경쟁에 한창이던 CEO들은 이를 외면했다. 심지어 모 은행은 금융당국 조사가 시작되자, 관련 내부 문건을 삭제했다.
금감원이 금융사 배상비율을 최대 80%로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자 책임(통상 최대 30%)을 넘어설 만큼 ‘본점’ 과실이 크다고 본 것이다.
근본적 원인이 뭘까.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지나친 성과주의는 윤리 의식을 흐리게 한다. 이는 ‘설마’ 하는 도덕 불감증과 맞물려 더 큰 피해를 낳는다.
우리는 그 아픔을 10여 년 전 금융위기를 통해 경험했다. 2008년 세계 4위 투자은행(IB)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파생상품 손실에서 비롯된 660조 원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산 수년 전부터 주위의 경고가 쏟아졌지만, 리처드 풀드 전 CEO는 이를 무시하고 과도한 리스크로 회사를 파산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한 비평가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풀드의 과신이 화를 불렀다”고 꼬집었다.
지역은행에 불과했던 웰스파고를 미국 ‘톱3’로 성장시킨 존 스텀프 전 CEO의 말로도 비슷했다. 그는 판매 목표 달성을 위해 200만 개에 달하는 ‘유령 계좌’를 개설한 직원들의 비위를 수년간 묵인하다 결국 사임했다.
이런 수많은 교훈에도 금융사들은 ‘도덕성 = 기업생존’ 공식을 자주 잊는다. 내부통제를 프로세스 안에 녹아들게 하고, 윤리교육을 통해 직원의 욕심을 제어하는 모든 과정이 CEO의 몫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책임자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은행의 욕심에 고객 돈 수천억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지만 대책만 요란할 뿐, 그 원망을 짊어진 이가 없다.
금융당국이 내린 벌의 경중은 중요하지 않다. 은행이 주장하는 ‘CEO 징계에 관한 법적 근거’ 역시 PB 말에 속아 전 재산을 날린 투자자에겐 변명일 뿐이다. 고객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을 수 없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진정성이 녹아든 신뢰 회복 방안을 고민할 때다. sun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