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나체를 촬영하는 것에 대해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어도 이를 촬영에 동의한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A 씨는 자신의 집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든 피해자의 하반신 나체 사진 등을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피해자가 사진 촬영에 동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사진을 촬영했다거나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A 씨가 피해자의 명시적, 묵시적 동의하에 사진을 촬영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고, 다음날 나눈 대화의 내용, 피해자가 촬영에 동의했음에도 술에 취해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에서 들고 있는 사정들을 감안하더라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만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며 원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나눈 대화에 의하면 피해자는 사진이 촬영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피해자가 잠든 상태에서 찍은 것이어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촬영에 동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짚었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는 사건 당시 술에 만취해 판단능력이나 대처능력을 결여한 상태에 있었음이 분명하고, 피고인은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가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봄이 옳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거부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해 동의를 한 것으로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