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주가 폭락은 지목할 수 있는 원인이 불분명했던 것과 달리 이번의 경우 기재가 명백하다. 특히 어떤 뉴스가 지난 목·금요일 이틀에 걸친 주가의 급락과 급등을 촉발했는지 명확히 볼 수 있다. 물론 바이러스가 근원(根源)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공포에 휩싸여 주식을 투매(投賣)한 데는 신속한 국제적 공동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 남 탓만 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요일 연설이 크게 작용하였다. 다음 날 아침 투자자들이 상황이 얼마나 악화될지 모르니 위험 자산을 일단 무조건 팔고 보자는 패닉을 조장했다.
트럼프의 연설이 수요일 저녁이었고 목요일 개장과 함께 주가 폭락이 시작되면서 둘 사이의 인과 관계를 쉽게 알 수 있다. 주가 폭락으로 ‘망한’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도 포함된다. 그동안 전례를 깨는 좌충우돌 행보를 거듭하면서도 본인의 대통령 취임 후 오른 주가를 내세우며 자신이 싫더라도 경기 호황을 원하면 자신을 지지하라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지난달까지 이런 단순명료한 전략은 절묘해 보였으나 주가 폭락으로 이제는 자신의 큰소리에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다.
‘어, 이게 아니구나’ 하는 판단으로 금요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규모 바이러스 검사와 비상지원책을 마련하여 야당인 민주당과 합의하였다. 이렇게 바이러스가 이미 미국의 문제이며 위기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구체적 대응책을 발표하자 주식시장은 전날의 폭락을 거의 만회하는 급등세를 보였다. 최근까지도 바이러스가 심각한 일이 아닌데 자신을 적대시하는 언론들이 부풀리고 있다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들의 생각이 금요일 발표로 크게 달라졌을지 의문시된다.
치사율로 보면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바이러스에 왜 선진국 투자자들이 이렇게 공포에 휩싸였을까? 국제적 공조의 리더십 부재가 제일 중요한 이유로 보인다.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빠르게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은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들불이 번지는 것과 닮은 상황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러 곳의 불을 동시에 꺼야 한다. 즉 긴밀한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 과거 국제적 위기 때마다 미국이 주도해서 국제적 공조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바이러스가 다른 나라의 문제여서 국경을 폐쇄할 것이니 각자 도생하라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나라 간 사람의 이동이 지금처럼 자유로웠던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사태가 진정되면 그 전으로 돌아갈 테니 현재의 연쇄적 국경 폐쇄가 대수인가 할지 모른다. 문제는 어떤 상태로 돌아갈 것인가이다. 냉동실에서 만드는 네모난 얼음은 녹은 물을 다시 얼리면 원상을 회복하기 쉽지만 정교한 얼음 조각은 다르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세계화는 큰 얼음 덩어리를 재료로 경제활동이 국제적으로 연결망 형상을 정교하게 조각했다. 국가 간 국경 폐쇄가 빈번해지는 것은 얼음을 녹이는 것, 멜트다운과 같다. 정교한 얼음 조각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 형체가 불가역적으로 변형되어 나중에 원상 회복이 불가능해진다.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가 증발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투자자들은 국제적 대응이 절실한 상황에서 리더십이 실종됐으니 그야말로 얼음 조각이 녹아내리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여러 곳에서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고 있어 머지않아 지금 상황은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향후 세계경제 질서가 어떻게 변형될지 장담할 수 없다. 열린 세계경제에 기대어 먹고살던 우리에게도 향후 질서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국내 정치권은 유권자 표심을 자극할 돈 살포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