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법원에서 확정된 노동 사건 10건 중 9건이 ‘친노동 판결’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 선고의 무게추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고 있는 만큼 기업들이 새로운 노동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이투데이가 대법원 판례공보를 통해 노동사건 상고심 판결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노동 관련 사건 32건 중 28건이 근로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고됐다.
현안별로 ‘근로자성 인정’, ‘불법파견’,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등의 사건에서 친노동 판결이 이어졌다. 특히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송에서 기업들이 고배를 마신 경우가 많았다.
친노동 판결의 최대 쟁점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적용 여부였다.
실례로 A 사의 근로자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한 것은 무효라며 임금을 청구한 소송에서 하급심(1·2심)은 피고 측의 신의칙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사 간 합의에 대해 무효를 주장했더라도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발생시킬 경우가 아닌 만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신의칙은 올해도 통상임금 소송의 주요 쟁점이다. 특히 소송 결과에 따라 7000억 원에 달하는 임금 지급 책임의 향방이 갈릴 현대중공업 사건에서는 신의칙 적용의 ‘기준점’이 제시될지 이목이 쏠린다.
그간 대법원은 신의칙 적용과 관련해 경영상 어려움이 있는지를 따질 때 매우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신의칙 적용의 명확한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소송 상고심 사건은 대법원에 접수된 지 4년 만인 지난 2월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됐다.
다만 이번에도 기업에 불리한 방향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엔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회사에도 신의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는 등 기업에 엄격한 대법원의 판단이 유지되고 있다.
일각에선 친노동 판결의 이유 중 하나로 대법관에 대한 성향을 주목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대법원은 진보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 주로 발탁됐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박정화·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모두 진보성향 판사들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김선수 대법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냈다. 이달 취임한 노태악 대법관도 김 대법원장이 지명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얼마 전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전합 판결에서 13명 중 반대의견은 1명에 불과했다”면서 “기업 입장에서 (친노동 판결의) 흐름을 잘 읽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급심에서 일부 정의가 되기는 하지만 아직 신의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판례공보는 새로운 법리가 담겼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판결 등을 정리한 자료다. 법원도서관에서 2주마다 전원합의체, 대법원판례집에 실을 의미 있는 판결과 선례적 가치가 있는 내용을 집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