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게 없는데 해결 안 해주면 민원 넣겠다고 협박당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싶습니다. 일하고 싶은 욕구가 싹 사라집니다.”
최근 보험업권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다. 게시글이 올라오자 여러 곳의 보험사 직원은 인사평가 제도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를 더했다.
금융감독원의 소비자 보호 기조가 강해지면서 보험업계가 민원평가 제도를 변경해 민원 감축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피민원자의 귀책사유가 없어도 민원만 접수되면 평가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평가 제도를 악용하는 블랙컨슈머(악성소비자)들이 늘고 있어 민원평가 체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DB손해보험은 올해부터 직원 평가 기준을 발생 민원으로 평가하도록 인사평가 제도를 변경했다. 무조건 민원이 들어오면 감점하겠단 얘기다. DB손보는 지난해 금감원 종합검사에서 민원이 많다는 이유로 시정조치를 받아 올해부터 민원평가 기준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보험사도 마찬가지다. 삼성화재는 피민원자 잘못 여부와 상관없이 접수만 돼도 평가상 -0.5점, 직원의 잘못이면 -1점, 사안에 따라 추가 감점이 있다. 다만 삼성화재 관계자는 “지역단마다 평가 체계는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해상도 중재를 통해 악성 민원은 평가에서 걸러내지만, 민원을 받은 직원에게는 어느 정도의 패널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KB손해보험도 접수기준으로 채널별(영업과 보상) 직원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이 같은 평가체계를 두고 보험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자체가 보험사를 평가할 때 접수된 민원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검사대상 금융사를 선정할 때 민원건수를 기준으로 선정한다. 특히 올해 상반기부터는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 대상 상품선정 기준에 민원 발생 건수를 반영하기도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직원들의 인사고과는 0.1점 차이로도 상·하위가 갈리는데 악성 민원의 불이익을 직원에게 고스란히 전가해 억울하다”며 “금감원은 민원이 들어오면 조정이나 중재보단 민원이 발생한 회사를 나래비 세운다. 단순히 민원을 줄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밖에도 보험사의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지표에 포함돼 수치가 왜곡되는 사례도 있다. 일반적으로 보험사들을 평가할 때 쓰는 불완전판매비율이다. 손보협회 공시에 따르면 불완전판매비율 산정 기준은 (품질보증해지 건수 민원해지 건수 무효건수) / 신계약 건수 × 100이다. 이 가운데 보험사 귀책이 없는 무효건수가 함께 산정되는 게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보험협회의 건의로 일부 사안은 무효건수에 포함되지 않게 됐지만, 보험업계는 보험업법상 무효건수는 모두 빼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민원이 많은 보험업권의 특성을 악용해 문제 행동을 일삼는 이른바 블랙컨슈머(악성소비자)에 대해 당국이 편향적인 정책을 편다면 보험사들은 이들의 과도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보험사나 보험사 직원 평가 시 민원 비중을 확대하려고 한다면, 귀책사유를 제대로 따져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