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사회지도층과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정 부담을 경감할 방안”이라고 했고, 정부는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가 가능한 제도가 국회에서 마련된다면 이를 받아들이겠다”라고 했다. 청와대도 동의한 사실상 당·정·청의 합의안이라고 한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상위 30%를 포함한 국민들께서 자발적 의사에 따라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거나 신청한 이후에도 기부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들이 마련해주신 소중한 기부 재원은 고용 유지와 실직자 지원 등 더 시급한 곳에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자발적 기부금의 쟁점은 ①국가가 먼저 제의한 국가 주도이고 ②재정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하며 ③사회지도층과 상위 30% 이상의 고소득자에 초점을 두었고 ④조성된 기부금은 고용 유지와 실직자 지원 등에 추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국민은 지금도 기부를 언제라도 할 수 있고, 많은 국민이 코로나 사태와 관련하여 기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정부는 재정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자발적 기부금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는 국가가 국민에게 재난상황을 앞세워 자발적 기부금을 내라고 사실상 권유 혹은 계획 등을 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으므로, 형식은 ‘자발적 기부금’이라 해도 사실상 ‘국가 주도 기부금’이 되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은 국가가 의뢰, 권유 또는 요청하는 기부금 모집은 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부금의 접수도 지정기탁 등 특별한 경우 외에는 원칙적으로 못 하게 한다. 공무원이 “국민 여러분, 기부금에 많은 관심을 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바로 불법이 될 수 있다. 이 법률의 취지는 ‘국가 주도 기부금’을 사실상 세금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가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사회 분위기를 띄워 세금 대신에 기부금을 쉽게 받아 처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과거 KBS의 ‘금 모으기’처럼 외부기관이 기부 캠페인을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국가가 직접 앞장서면 곤란하다.
국가의 세출은 세입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여 국채 또는 차입금으로 충당하도록 ‘국가재정법’에 규정되어 있다. 국가 주도 기부금은 해당하지 않는다. 세입의 대표는 세금이고, 세금은 소득재분배 등을 반영하여 헌법과 세법에 따라 강제로 징수된다. 기부금의 출연은 국민 개인의 자유 선택에 따른다. 국가가 장애인체육관을 만든다는 이유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기부금을 모집하면 위법이 되기 때문에, 국가의 세금이나 부채로 재원을 조성해야 한다.
이번 자발적 기부금의 대상은 처음부터 주로 사회지도층과 상위 30% 이상의 고소득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국가가 이들에게 기부금의 의뢰, 권유 혹은 요청을 넘어 압박을 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들이 기부금을 내지 않으면, 정부 발표문에도 있듯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지 못한 국민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다른 계층으로부터 기부 사실 인증사진도 요구받을 수 있는 등 국민 갈등이 우려된다.
자발적 기부금이 대안으로 나온 이유는 재정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조성된 기부금은 국채 상환 등에 사용해야 하지만, 정부는 고용 유지와 실직자 지원을 위해 또다시 지출을 늘리는 데 사용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이번 자발적 기부금은 부작용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현행 법률에 위배되는 사항은 제·개정으로 보완하겠지만, ‘국가 주도 기부금’이 사실상 세금이라는 개념은 벗어날 수 없다. 개인 영역인 기부금에 국가가 직접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의 재원은 세금 혹은 부채로 해결하는 것이 정공법이며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