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안 본 눈 삽니다

입력 2020-07-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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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현 퍼셉션 대표

소서(小暑)를 앞둔 꽤 더웠던 날 동료들과 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먼 길이나 ‘산 좋고 물 좋으니 산소 힐링 하고 오자’ 했던 곳에서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엑스포가 열렸다는 커다란 관광단지였다. 기막힌 산세에 큰 기대를 했던 동료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넓은 곳 여기저기 아쉬운 공간들 가운데 초여름 정오의 햇빛을 한껏 받은 아주 커다란 황금거북이가 번쩍이고 있었고 국적을 알 수 없는 건물들도 보였다. 누군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고발하고 싶다….” 모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거북이가 무슨 죄가 있겠나. 다만 ‘거기에, 그 맥락에 왜?’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주춤했던 이동이 조금씩 다시 시작되면서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진 해외여행 대신 사람들의 관심은 국내로 향했다. 원래 유명했던 장소뿐 아니라 몰랐거나 잊었던 곳에 찾아가 새로운 경험을 한다. 대학 때 교지편집위에서 방학마다 갔던 발간여행 덕에 서울 촌사람이 팔도를 돌며 마음의 고향으로 점지하는 곳들이 생겼고 지금도 가끔 찾아가곤 한다. 이런 내게 사람들의 관심이 지역 곳곳으로 향한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급격한 도시화에 사람이 줄고 잊히며 폐허가 될 수 있는 곳에 수려한 자연, 특색 있는 음식, 작지만 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곳은 다시 생명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긍정적인 면만 있지는 않다. 여러 곳에서 만나는 이상한 풍경에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정부와 지자체의 난개발로 만들어진 이유를 알 수 없는 흉한 조형물들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지원사업 명목의 개발은 상상을 초월하는 예산으로 상상을 더 크게 초월하는 악재를 만들기도 한다. 자연만 제대로 살렸어도 좋았을 것을, 요상하기까지 한 설치물과 맥락 없는 대규모 행사를 만든다. 갑자기 몰려든 외지인에 지역민들은 반가움 반 당황 반으로 숙박이나 외식업에 뛰어들지만 준비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마을을 살린다며 만든 거리와 아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슷비슷한 간판의 가게들을 보면 동네를 통째로 프랜차이즈화한 것 같다. 호기심으로 찾아왔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고 방문객은 줄어드니 주민들은 낙심하고 주변을 원망하게 된다. 다시 의지를 품고 마을로 향한 젊은이들은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거나 지원금이라도 없으면 말도 안 섞겠다는 지역민을 만나 역차별을 경험하고 포기하는 상황도 생긴다.

특산물 홍보라는 이유로 마늘, 또 어디에는 고추 모양의 가로등이 화려하게 자태를 자랑하는데, 웃픈 현실은 행정구역으로 나뉜 두 지역에서 서로 “마늘은 우리 거네, 고추도 우리 거네” 하며 실랑이를 벌인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시설이나 조형물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콘텐츠는 어떠한가. 1차원적이더라도 있으면 다행인 경우가 다반사다.

누구의 잘못일까. 지역다움·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변화 이후 거주민의 삶보다 타지역과 경쟁하듯 보여주기식의 행정을 펼쳐 온 공공, 의사결정 책임이 있는 리더들의 전략적 관점·적정 취향·소신 부재, 어쩔 수 없었다며 원래 그 디자인이 아니라며 남을 탓하는 전문가들의 무책임함, 나 혹은 우리 마을에만 이득이면 된다는 이기주의… 등 모두의 책임이다.

가끔 마을 개선 프로젝트를 만나면 가장 먼저 거주민, 지자체 리더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각자 무엇을 원하고 어떤 목표가 있는지 살펴보고 수렴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면 진행하지 않는다. 대신 ‘이 일이 계속 진행되려면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실패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지’에 대해 정리하고 관계자들에게 전달한다. 어영부영 주변의 눈치를 보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황금거북이를 만들 수는 없지 않나. 정답이 아닌 것을 정답이라 우기고 오답이 왜 오답인지 모른 채 넘기다 보면 진짜 정답에 가까이 가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된다.

해외의 건축이나 조형물이 지역을 살리고 유명해졌다 싶으면 그대로 따라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 사례에 집착해 앞뒤 없이 형식만 따라 하는 관습은 이제 좀 버려도 좋지 않을까. 사람이 사는 곳은 매우 복잡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자연, 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흔적들이 과거로부터 켜켜이 레이어를 쌓아가고 있다. 그러니 조금은 촌스럽고 소박하더라도, 속도가 조금 더디더라도 주민들이 직접 일구어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정부나 지자체는 이를 뒤에서 돕는 역할이면 좋겠다.

그래도 어른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지역의 청년들과 애착을 가진 지원군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며 움직이고 있는 곳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 작은 나라에서 지역이 살아나야 모두가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는 긴말이 필요 없지 않을까. 모두 같이 만들어야 하는 우리가 사는 곳이니 ‘안 본 눈 사고 싶다’는 푸념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겠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제주, 강릉, 군산에서 활동하는 로컬 브랜드의 이야기를 풀어낸 ‘로컬시티전’이 열렸다. 반가운 일이다. 다음의 실천을 고민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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