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희의 뉴스카트] 집밥이 부른 먹거리 양극화

입력 2020-08-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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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아침 기상 시간이 빨라졌다. 식재료 구입 비용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는 나의 일상마저 바꿔놓았다. 사실상 등교가 주 1회로 줄어든 아이 탓이 크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덩치가 나만해졌지만 부모 입장에서 볼 땐 외형만 자랐을 뿐 스스로 뭔가를 한다는 게 불안한 아이로 비쳐질 뿐이다. 화구 앞에서 간단히 국을 데우는 것조차 불안하니 매일 아이의 아침과 점심 식사 준비는 오롯이 엄마인 내 몫이다.

아침이 바빠진 이유다. 아이가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출근해야 하니 가뜩이나 부족한 잠을 줄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간식으로 먹을 음료와 디저트를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것도 어느새 습관처럼 몸에 익었다.

나의 작은 일상의 변화는 비단 우리 가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식품과 외식시장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일고 있다. 집밥이 늘어나니 식품기업들은 연일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중이다. 반면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식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에서도 외식을 자제하라며 배달을 권장한다. 앞으로 외식업체, 특히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더욱 위축되리란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급식과 식재료 공급 기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식품기업이 집밥 확대로 인한 실적 상승에 성공했다. 짧은 시간에 간단한 요리를 완성할 수 있는 밀키트와 가정간편식(HMR)은 코로나19로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라면업계는 내수와 수출이 동반상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전세계에 K-푸드의 위상이 알려지고 기업들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식품업계는 올해 두번째 3조 클럽 가입 기업을 배출할 태세다. CJ제일제당을 제외하고 식품대기업 중 아직까지 3조의 벽을 깬 사례는 없었다. 풀무원, 대상 등이 3조 클럽에 유력한 기업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팬데믹을 등에 업고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전제한다면 마냥 찬사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식품 대기업들의 성장의 이면에서 신음하는 자영업자들이 묘하게 겹쳐보일 때면 안타까움이 앞서기도 한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자영업자는 전년동기대비 2.2%(12만 7000명) 줄어든 554만8000명이었다. 1년 전 대비 월 1만명 이상의 자영업자가 폐업을 결정한 셈이다. 폐업한 자영업자가 고용했던 직원들이 생계를 위해 1인 창업에 나서면서 1인 자영업자의 수가 늘었다는 기형적인 통계는 자영업자의 위기를 보여주는 또하나의 단면이다.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를 꼼꼼히 바르고 인근 식당을 향했다. 수년간 단골로 이용한 식당은 늘 긴 줄이 장사진을 이뤘지만 지금은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의 대기자 명단이 휑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인지 매장 내 테이블의 절반은 비어있다. 주인에게 물었다. “요즘 어때요”라는 일상적인 질문에 주인은 이마의 주름이 한층 깊어진다. “보는 것처럼 우리 처지가 말이 아니야”라며 2호점 오픈 계획까지 접었단다. 그는 장사가 잘 된 탓에 2호점, 3호점까지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매장하나도 운영하기 버거울 정도라며 긴 한숨을 내쉰다.

그나마 배달을 주력으로 하는 식당들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가맹점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코로나19가 식품 대기업과 자영업자의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사실을 목도하는 순간 주인이 내준 따끈한 탕이 테이블로 나왔다. 오늘 따라 국물 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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