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신청 사실상 ‘그림의 떡’
내부 의결로 조건 완화 가능 불구
정부 결정만 수용 ‘거수기’ 전락
안건 당일보고 졸속 의결 논란도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15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저비용항공사(LCC) 등 항공업계에 대한 기간산업 안정기금 지원 여부를 논의하는 심의위가 열린다. 앞서 코로나19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제주항공이 기안기금을 신청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번 심의위는 해당 내용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기안기금이 조성된 당시에도 LCC 등은 계속해서 경영난을 겪었으나, 기안기금의 높은 문턱과 까다로운 지원 요건 때문에 기안기금을 요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공사의 업황 부진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뒤늦게 제주항공이 손을 내민 것이다. 실제로 기안기금 출범 후 4개월간 신청한 기업은 아시아나항공이 유일했을 정도다.
지원하는 기업이 없어 애써 조성된 기금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왔는데도 기안기금의 운영 방식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기안기금 한 심의위원은 “금리도 비싸고, 고용유지 조건도 까다로워 한계 기업들의 지원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는 내부 위원들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지만, 규정은 개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안기금 지원 조건은 2019년 기준 총 차입금 5000억 원, 근로자 수 300명 이상 등이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와 달리 LCC는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무엇보다 대출금리가 ‘시중금리+@’이다 보니 지원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해당 내용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위에선 이러한 규칙을 정하는 주체는 심의위에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규칙을 정한 거니까 시행령을 어기지 않는 수준에서는 지켜야 한다”면서도 “그 조건은 심의위가 의결로 만든 규정이다. 불합리한 내용이 있다면 그건 위원 내부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심의위가 의지만 있다면 시행령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기안기금의 지원 요건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심의위는 기안기금의 마구잡이식 운영을 막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자금은 산업은행에서 집행하지만, 결정 권한을 심의위에 부여한 이유다. 40조 원 규모의 막대한 자금의 지원을 결정하는 데도 안건에 대해서 파악하지 않은 채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심의위 위원은 이번 주 안건 내용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다”라며 “지난번 아시아나항공 지원 여부를 결정할 때도 당일 날 내용을 보고 받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의 자체가 비상근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해당 위원의 말대로라면 지난달 아시아나항공에 2조40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승인했을 때도 당일 안건을 보고 받고 지원을 결정했다는 의미가 된다. 당시도 오전에 열린 산업 경쟁력 강화회의에서 내용이 보고된 이후 기안기금 지원이 결정되면서 정부의 결정 내용을 그대로 의결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안기금의 조성이나 운영이 정부가 운영하는 금융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이기 때문에 심의위가 역할을 크게 부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