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주식시장에서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싶어 이제라도 주식을 사려고 해도 밸류에이션에 대한 부담감이 생긴다. 아무래도 이익 규모 대비 시가총액이 너무 커서 망설이는 투자자도 있을 것이고 내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이익의 기대치가 지금 주가에 거의 다 반영되었다는 생각에 과감히 매수 버튼을 누르기도 쉽지 않다.
주가는 보통 1년에서 1년 반 정도 선행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예상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 신이 아닌 이상 정확히 예측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전설적인 투자자들은 미래 경제에 대한 예상보다는 기업에 집중하라는 얘기들을 많이 해왔다.
우리가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보면서 가장 먼저 보는 것 중 하나가 연 매출액과 영업이익 규모이다. 기업의 가치인 주가라는 것이 앞으로 벌어들일 순현금흐름의 현재 가치이기 때문에 사업을 통해 연간 벌어들이는 이익 규모를 보면 주가에 대한 저평가, 고평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손익계산서의 영업이익을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의 경우 2020년 3분기 누적 매출액은 3조8000억 원, 영업이익은 8900억 원이다. 연말까지 이 추세로 간다면 연간 영업이익은 1조2000억 원 내외로 예상되는데 이는 네이버의 시가총액 48조 원 대비 40분의 1 수준이다. 만약 48조 원으로 네이버를 인수한다면 현재 영업이익 수준으로 원금을 회수하는 데 40년이 걸린다는 의미이다. 지금 투자하기에는 너무 비싼 가격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회계적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네이버의 연간 영업이익은 1조2000억 원이 될 수도 있고 두 배가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만약 영업이익 규모가 두 배라면 지금 네이버 주가가 반드시 비싸다고 보기 어렵다. 어떻게 이런 계산이 가능했을까?
정답은 연구개발비에 있다.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3분기까지 연구개발비로 영업이익보다 더 큰 9673억 원을 지출했고 전부 영업비용으로 처리했다. 즉 회사가 아홉 달 동안 연구개발비 투입 전에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2조 원 가까이 된다는 의미이다. 회사는 당장의 실적보다는 미래의 성장을 택했기 때문에 벌어들인 이익의 반 이상을 재투자한 것이다.
만약 회사가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무형자산으로 인식했다면 손익계산서의 영업이익이 지금보다 두 배 이상으로 표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이 아닌 전액 비용으로 처리했다.
연구개발비에 대한 회계기준을 살펴보면 회사가 일정 요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면 무형자산처리가 가능하고 그렇지 않다면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일정 요건은 총 6가지인데 핵심은 기술적 실현 가능성과 미래 경제적 효익 창출에 대한 것이다. 즉, 지금 하는 연구개발 과제가 성공할 것이란 것과 그 산출물로 회사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업력이 오래되었고 그동안 계속 성과를 보였던 기업이라면 보여주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네이버를 포함한 대부분 대기업은 거액의 연구개발비를 지출하면서 영업비용으로 처리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늘 있어서 자산으로 처리하는 데 조심스러운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27조 원인데 비용으로 처리한 연구개발비만 16조 원이다. 연구개발비 투입 전 영업이익이 40조 원을 넘는다는 얘기이다.
네이버나 삼성전자 모두 그동안 거액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매년 매출액과 영업이익 규모를 늘려왔다. 올해 네이버가 연간 1조20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는데 아마 내년 이후엔 더 늘어날 것이다. 물론 연구개발비 투입 전 이익 규모는 훨씬 더 크다.
이런 식으로 재무제표를 분석해야 투자의사 결정에 도움이 된다. 숫자만 보지 말고 행간의 숨은 의미까지 찾아서 파악할 수 있는 실력을 쌓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