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로맨스가 다가 아니야…넷플릭스 ‘브리저튼’을 통해 본 리젠시 시대

입력 2021-02-05 16:28 수정 2021-02-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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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를 바라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브리저튼' 포스터 (출처=넷플릭스)
▲'브리저튼' 포스터 (출처=넷플릭스)

형형색색의 꽃들 사이로 우아한 왈츠가 펼쳐진 파티장.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파티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브리저튼 가의 맏딸 다프네다. 다프네가 파티에 등장하자 머나먼 이국의 왕자도, 바람둥이 공작도 모두 그에게 마음을 뺏긴다. 과히 사교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라 불릴 만하다. 올여름이 가기 전, 결혼이 목표인 다프네. 과연 그의 선택은 백마 탄 왕자일까. 계약 연애하던 바람둥이 공작일까.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Bridgerton, 2020)이다.

브리저튼은 줄리아 퀸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18세기 초 영국 사교계를 배경으로 런던 브리저튼 백작 가문 이야기를 다룬다. 시즌 1은 사교계에 막 데뷔한 맏딸 다프네의 우당탕 결혼 이야기가 중심이다. 계약 연애라는 익숙한 서사 속에 흑인 공작이라는 파격적 설정으로 시선을 끌었다. 결과는 대성공. 브리저튼은 전 세계 83개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얼마 전에는 시청자 수 8200만 명을 돌파해 '퀸스 갬빗'을 제치고 넷플릭스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 됐다.

▲다프네는 올여름 사교계의 다이아몬드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지만, 의도치 않게 상황이 꼬이며 순탄한 결혼 계획이 틀어지자 헤이스팅스 공작과 계약 연애를 시작한다.  (출처=넷플릭스)
▲다프네는 올여름 사교계의 다이아몬드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지만, 의도치 않게 상황이 꼬이며 순탄한 결혼 계획이 틀어지자 헤이스팅스 공작과 계약 연애를 시작한다. (출처=넷플릭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리젠시 시대(1811~1820)는 조지 3세가 재위 중 정신병을 앓아 조지 4세가 섭정을 하던 시기를 가리킨다. 영국 역사에서 섭정 시대라 하면 바로 이 시기를 가리킨다. 브리저튼 외에도 드라마·영화를 비롯해 많은 대중문화 작품이 시기를 배경으로 로맨스를 그렸다. 이는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의 명작을 남기며 영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제인 오스틴 때문이다. 로맨스 장르 문학에는 아예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하위 장르 '리젠시 소설'이 있을 정도다.

작품 속 리젠시 시대는 낭만적으로 그려지지만, 사실 이 시기는 혼돈과 역동의 시대였다. 산업혁명이 무르익으며 증기기관·인쇄술 같은 새로운 기술이 삶의 양식을 변화시켰고, 동시에 프랑스 혁명(1789~1794)은 사회 질서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옆 나라 귀족들은 이미 단두대 이슬로 사라진 19세기 초반, 확고한 신분 관념은 흔들리는 게 당연했다. 귀족은 더는 예전처럼 놀고먹으며 살 수 없었고, 신분에 맞는 품위와 사회적 책임을 보여야 했다.

▲정체 모를 누군가가 전하는 사교계 소식지 '레이디 휘슬다운'은 산업혁명 이후 인쇄술이 발달한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 (출처=넷플릭스)
▲정체 모를 누군가가 전하는 사교계 소식지 '레이디 휘슬다운'은 산업혁명 이후 인쇄술이 발달한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 (출처=넷플릭스)

이 시기는 또 중세 말 태동한 젠트리 계층이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을 통해 확고하게 자리 잡는 시기였다. 젠트리는 공작, 백작 같은 귀족 타이틀은 없었지만, 토지를 소유한 부유한 지주이거나 상인, 법률가 등 주류 계층을 말한다. 이들은 상업·금융업에 종사하며 식민지 건설 및 대영 제국의 확장에 기여했으며, 그 과정에서 근대 자본주의 산업 체계가 고도로 발달했다.

당시 사회에 혼돈과 역동을 불어넣은 또 하나의 흐름은 전쟁이었다. 18세기 말 영국은 나폴레옹과 기나긴 전쟁(1797∼1815)을 치렀고, 이 과정에서 소득세가 탄생했다. 영국에서 최초의 소득세가 탄생한 건 1799년이었다. 당시는 사유 재산 보장과 사적 자유가 절대적 가치로 여겨지던 시기, 소득세는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악마의 조세'로 불렸다. 이후 영국 내 소득세는 여러 차례 폐지되고 부활하기를 반복하다 전쟁이 끝난 리젠시 중반 1816년에 완전히 폐지된다.

▲브리저튼은 원작에서 백인으로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과 여왕을 흑인으로 캐스팅하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정치적 올바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출처=넷플릭스)
▲브리저튼은 원작에서 백인으로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과 여왕을 흑인으로 캐스팅하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정치적 올바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출처=넷플릭스)

한편, 당대는 낭만주의 사조와 함께 귀족 문화가 발달했지만, 빈부 격차는 매우 벌어졌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밀려든 노동자들의 삶은 처참했다. 당시 영국 노동자의 1년 평균 임금은 15~20파운드에 불과했지만, 당시 상류층은 한 번 파티를 열 때 500파운드를 넘게 썼다. 당시 노동자의 처우는 매우 열악했으며, 어린아이도 14시간 이상의 비인간적인 장기 노동에 시달렸다. 1800년에 100만 명 남짓이었던 런던 인구는 1815년 140만 명으로 늘어났는데, 이로 인해 당시 런던은 범죄·빈민 등 각종 사회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리젠시 시대는 노동자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가혹한 시기였다. 결혼과 연애는 낭만적인 로맨스인 한편, 마땅한 경제적 능력이 없던 여성의 유일한 생존 수단이자 신분 상승 도구였다. 브리저튼에도 결혼이 낭만으로 가득한 로맨스가 아니고 현실이란 걸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페더링턴 부인은 남몰래 임신한 조카 마리나에게 나이 많은 남성과의 결혼을 종용하며 그를 빈민가로 데려간다. "만약 서둘러 결혼하지 않으면 이들처럼 살게 될 것"이라 경고하면서 말이다.

▲마리나는 임신 사실을 숨긴 채 브리저튼가의 셋째 콜린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자 한다. (출처=넷플릭스)
▲마리나는 임신 사실을 숨긴 채 브리저튼가의 셋째 콜린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자 한다. (출처=넷플릭스)

리젠시 시대가 대중문화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까닭은 당시의 삶이 현재 우리의 삶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브리저튼 속 청춘들이 고민하는 사랑과 연애, 결혼 문제는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청춘에게도 여전히 골칫거리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술은 빠른 속도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고, 빈부차이는 여전히 건재하다. 비록 코로나로 드라마 속 화려한 파티는 사라졌지만, 드라마 속 질투와 갈등, 고민, 성장은 여전히 우리 삶을 바쁘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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