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해마다 기록적인 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이상기후와 재해가 지구 기후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9일 6차 평가보고서에서 지구생태계의 기후변화 방어선이라 할 지구 연평균 기온 1.5도 상승이 10년 뒤가 아니라 곧바로 직면하게 될 상황이라 예측하며 ‘코드 레드’를 경고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한데 기후변화는 더욱 위기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눈 떠 보니 선진국이 되었다고, 실제로 우리는 선진국다운 변모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이상기후가 빈번해지면 여타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는 먹거리를 걱정하게 된다. 우리 먹거리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처지이니 수입하는 나라의 작황이나 식량을 사 올 달러는 충분한지, 비축하고 있는 양은 여유가 있는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지난 6일 공공비축미(정부미)의 양이 25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쌀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작년에 생산량이 6% 이상 줄어들어 나타난 상황이라고 농식품부는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겨울과 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대응한다고 산란계와 종계를 무분별하게 과잉 살처분하여 양계 생산 기반을 무너뜨려 가을이 되도록 생산 회복을 못하고, 달걀값 안정화를 이루지 못하는 농정을 보면 미덥지 못하다. 당시부터 달걀과 가공용 냉동달걀물, 병아리를 수입해 왔지만 달걀은 그 나라에서 길러 먹는 품목이라 충분한 양을 수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후위기·지역위기·먹거리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국가 정책과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다음 정부의 핵심 과제이다. 농업·농촌·먹거리 문제가 시대적 과제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더 많은 관심과 정책 논의와 실제적인 예산과 역할의 확대가 필요하고 농업·먹거리의 사회적 가치와 위상을 높이는 논의가 대선을 앞두고 활발해져야 한다.
환경과 지역을 통합적으로 전환하여 기후위기 대응(땅은 물과 함께 확산된 탄소를 저장·안정화할 공간, 농(農)은 생명에너지를 생산하며 탄소를 저장·안정화하는 활동, 농촌 에너지 자급), 지역위기 대응(양극화 해소, 지역균형발전, 농촌지역 활성화, 자치분권), 먹거리 위기(식량자급률 향상, 생산수급 안정화, 땅과 먹거리의 건강성 회복)에 대응할 적기이다. 소극·방어·대증적, 칸막이·비협치, 갈라치며 군림하는 관료체계의 공고화를 방치해 온 적폐를 전환적으로 해소할 기회이기도 하다.
하나의 접근법으로 ‘환경농촌식품부’ 행정조직 개편을 제안한다. 환경·농업·먹거리·농촌지역 등의 통합부처로 ‘환경농촌식품부’로 격상하여 시대적, 통합적 국가정책 과제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 정도의 전환 없이는 지금의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 영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경험으로 식량안보를 인식하고, 세기말 광우병 사태를 겪으며, 2001년 농·수산·식품부(MAFF)와 환경·교통·지역부(DETR)가 통합해 출범한 환경식품농무부(DEFRA, Department for Environment, Food & Rural Affairs)로 전환해 성과를 본 사례와 사회정책 변천을 참조해 볼 수도 있다.
환경농촌식품부는 국가 차원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체계 구축과 운영 방안이며, 기후위기 대응과 극복을 위한 그린뉴딜 핵심체계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도, 다음 정부가 반드시 관철해야 할 과제는 정책 추진 과정의 민주성, 공공성, 개방성 원칙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위기 대응과 선진 사회로의 전환은 혁신 없이 이루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