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5단계를 정의했다.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단계인데, 대학병원 의사로 일하면서 나는 이 5단계를 지나는 환자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한다. 왜 자기를 곧 죽을 사람 취급하냐며 소리를 지르는 환자도 있고, 너무 무서우니까 제발 5분만 같이 있어 달라는 환자도 있다. 복수가 차 배가 남산만큼 불렀는데 식욕을 조절할 수 없어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는 환자도 있고, 가족들이 해오는 음식은 고사하고 미음 한 수저 떠먹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환자도 있고, 한잠도 자지 못하고 밤새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환자도 있다. 누구는 이 5단계를 지나는 데 수개월이 걸리고 누구는 이 5단계를 지나는 데 수일밖에 걸리지 않지만, 지나는 이나 지켜보는 이 모두에게 힘든 시간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라는 것이 생겨 19세 이상 성인이면 현재 암 환자가 아니어도 향후 겪게 될 임종 단계를 가정해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의학적 상황에서 치료 효과 없이 무의미하게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시술을 거부하겠다’는 의향을 미리 서류로 작성해 둘 수 있다. 이번 주말, 나는 그녀들의 죽음을 함께하며 나라면 어떤 방식의 끝을 선택할까 많은 생각을 하였다. 초 단위로 빠르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잠시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나의 죽음, 나의 끝’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