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 관객의 태도는 둘로 나뉜다. 김종분 할머니를 잘 아는 사람은 1991년 노태우 정부 당시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시위 도중 목숨을 잃은 그녀의 둘째 딸 김귀정을 떠올리며 당시의 투쟁과 아픔을 회고하는 시간을 기대하고, 혹은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서 어렵고 신산스런 삶을 살아 온 한 노점상 할머니에게서 여느 교양 다큐처럼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로 대별될 거 같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이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1990년대 학생운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혹자는 1987년 노태우의 6·29 선언을 정점으로 이제 ‘잔치는 끝났다’면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딛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자고 발 빠르게 선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군사독재의 그늘은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었다. 특히 1991년은 유난히도 젊은이들의 희생이 많았던 해였다.
다큐는 할머니의 소소한 일상들을 비춰주며 시작한다. 함께 노점을 하면서 친해진 분들과 10원 내기 화투를 치거나, 빌린 돈 3만 원을 20년 만에 5만 원으로 갚아 준 어느 손님을 화제로 함께 저녁을 나누며 하루를 마감하는 모습에서 푸근한 이웃의 정을 느껴보기도 한다. 영화는 그저 맘씨 좋은 할머니들의 밀착 라이프 영상으로 잠시 흐르다 이내 작은 딸의 비보가 전해지면서 분위기는 급전한다.
김진열 감독은 처음에는 김종분 할머니의 ‘격동 80년’ 삶에 초점을 맞췄다가 김귀정추모기념사업회를 만나면서 다큐의 구성을 다시 하게 되었다 한다. 카메라 롱 샷, 롱 테이크로 딸의 비석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김종분 ‘어머니’의 모습을 담아낸 명장면은 마침내 우리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우리가 김종분 할머니를 지금껏 세상으로부터 지켜왔다고 하지만 실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한 시절에 품었던 우리들의 초심을 일깨워주고 또한 지켜주고 있다. 그리고 삶은 이렇게 지속되고 있다는 넉넉함의 지혜도 전해준다.
예능에서 자주 보는 김종분 할머니의 손녀딸이 깜짝 출연하니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꼭들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노회찬6411’ ‘태일이’에 이어 요즘의 어지러운 세상에 우리들의 눈을 밝혀줄 영화가 아직 극장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