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내가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아마도 루저에 대한 연민, 비극적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의 아픔, 여전히 불확실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복원하는 힘. 뭐 이런 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심야 상영이 꽤 인기였다. 눈이 내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쓸쓸한 초겨울 밤, 나는 극장 의자에 몸을 파묻고 ‘파이란’에 몰입하였고 마지막엔 어깨를 조용히 들썩이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강재야, 강재야, 이 X발 강재야, 정신 좀 챙기고 살자….” 3류 깡패도 못 되는 동네 양아치 강재(최민식)는 친구인 보스(손병호)에게 일상을 무시당하며 비루하게 살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생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돈이 궁했던 그가 불법체류자인 중국인에게 호적을 팔았고 아내로 등재된 사람이 강백란(장백지)이란 여자였다. 귀찮기만 한 뒷수습을 위한 행로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파이란’과 조우하게 된다.
멜로 드라마의 흐름이라면 둘의 만남이 있을 듯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대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파이란의 진심은 인생 밑바닥까지 떨어진 초라한 건달에게 묵직한 사랑의 의미를 전해주고 마지막엔 존재의 성숙과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곤 끝내 우리를 오랜만에 뜨겁게 만든다.
그녀의 장례를 마치고 강원도 동해안 둑방에 앉아 강재는 서럽게 운다. 눈물을 보일 건지 아닌지를 놓고 감독과 오랜 논쟁을 했지만 결국 배우 최민식의 의견을 따랐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백미는 파이란이 강재에게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 당신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파이란’이 다시 리마스터링되어 재개봉했다 한다. 어느 흐린 조그만 주점에서 나는 강재와 파이란을 생각하며 술을 마실 것 같다. 눈까지 내리면 더 좋겠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