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중학생 견학을 받은 적이 있다. 의사와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적어 낸 학생들 너덧 명이 함께 견학을 왔다. 환자의 진료 장면을 참관하도록 할 수 없으니, 내시경과 초음파, 엑스레이 같은 기계들을 가까이서 보거나 만지작거리게 해주었고, 청진기 소리를 들어보게 하고, 의사·간호사 가운을 입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실 학생들이 와서 한 건 의사 가운 코스프레와 병원놀이 정도였지만, 만족도는 참 높았다.
반면에 나를 비롯한 직원들은 고단했다. 환자와 학생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면서도, 학생들이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양보해야 했고, 뭐라도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진료 도중에 여기저기를 안내해야 했다. 시간을 많이 들였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가르쳐 준 게 뭐지 돌아보니 사실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핵심 문제는 우리가 딱히 ‘우리여야 할 이유’를 스스로 못 찾았다는 것이다. 그 학생들은 굳이 ‘살림의원’에 견학을 하러 올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초·중·고등학생들의 체험학습이라면, 규모가 크거나 장비가 많은 의료기관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살림의원은 ‘살림의원’에서만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들을 준비가 된 이들에게 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우리만 알려줄 수 있는 것? 살림의원은 가정 방문진료, 방문간호를 하고 있고, 장애인과 성소수자,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주치의 진료를 하고 있다. 의원-치과-한의원-데이케어센터-방문요양 등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재활치료사-영양사 등이 모여 다학제·다직능의 팀진료를 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아 함께 운영해가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것도 그렇고, 여성주의를 가치로 내걸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
그럼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개인정보보호에서부터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예의까지 사전에 교육받고 와야 한다. 의료기관에서 실습을 받아준다는 것의 무게감을 알고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환자분들에 대한 존중을 새기고 와야 한다. 아무리 의대·간호대생이라 해도, 환자들이 불편한 건 매한가지니까.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보건의료인들을 위한 투자라고 환자분들이 기꺼이 느낄 수 있도록, 준비된 학생이라야 한다.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