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수탁자자본주의의 개념과 특징

입력 2022-01-05 13:28 수정 2022-01-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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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학문은 현실을 반영하며 증거하기도 하지만 종종 현실보다 한발 앞서 나가며 사회를 리드해 나가기도 한다.

지난 2000년 제임스 홀리(James. P. Hawley)와 앤드류 윌리엄스(Andrew T. Williams) 교수는 ‘The Rise of Fiduciary Capitalism’이란 저술을 통해 금융자본주의 고도화와 더불어 ‘수탁자자본주의’가 도래했음을 선도적으로 설파했다.

‘창업자 경영’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거쳐, 점차 기관투자자 중심의 ‘보편적 소유주(Universal Owner)’ 시대가 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로부터 6년 후인 2006년, UN이 수탁자 책임투자에 관한 여섯 가지 원칙들을 발표하며 이에 화답한다. 이후 ESG투자가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행보를 펼치게 됐다.

4년 뒤,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은 금융위기의 아픔을 딛고 영국을 선두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제정을 통해 구체화되며 세계 각국에서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캘퍼스(CalPERS),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 블랙록(BlackRock) 등 세계 각국 연기금들과 선진 자산운용사들은 자사 나름의 코드를 제정하여 수탁자 책임활동들을 수행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책임투자의 기원인 수탁자자본주의와 UN 책임투자원칙(PRI)을 낱낱이 대조해가며 그 근원과 개념을 다시 확인해 보는 것은 ESG와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에 나름 의미가 있다.

▲UN 책임투자원칙(PRI) 6대 원칙 /사진 = UN 책임투자원칙 홈페이지
▲UN 책임투자원칙(PRI) 6대 원칙 /사진 = UN 책임투자원칙 홈페이지
그러면 ‘수탁자자본주의’의 주체가 되는 보편적 소유자란 무엇이며 어떤 특징이 있고 ESG, 중장기 투자와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보편적소유자’란 한마디로 연기금이나 뮤추얼 펀드처럼 많은 수익자들이 있고 불특정 다수가 가입해 모집된 자금을 말한다.

국민연금을 예로 들면 쉽다. 국민연금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가입해 정기적으로 납입한다. 그 규모는 2021년 10월 기준 918조 원에 달한다.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오지 않으니 다른 수치들과 대조해 보자. 대한민국 살림을 위한 예산은 2021년 558조 원, 2022년 예산안은 604조 원이다. 2022년 1월 4일 기준 유가증권 시장의 시가총액은 2212조 원,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은 449조 원이다.

즉 국민연금 규모는 한국 연간 예산과 코스닥 시총의 대략 2배, 유가증권 시장의 절반 정도이므로 경제와 자본시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미 수년 전에 상위 1000개 기관투자자의 자금이 세계 주식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니(A New Era of Fiduciary Capitalism, CFA, 2014) 덩치만으로도 기관투자자들의 힘을 이해할 수 있다.

개인 투자자가 직접 기업의 주인이 될 수도 있지만 경제에서 금융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국민이 연기금이나 펀드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주주가 되는 시대, 즉 ‘보편적소유주 시대’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른 유동성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수탁자의 역할’ 또한 당연히 커지는 것이다.

이렇듯 보편적소유주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객으로 ‘방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독특한 특징들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경제 전반’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한마디로 금융의 리더십이다. 어느 기업에서나 투자금은 회사 존립과 운영, 그리고 성장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투자 포트폴리오 운용과 성과 평가 시 개별 주식의 수익률 외에도 개별 주식 간, 그리고 다른 투자상품과의 ‘수익 상관관계’와 ‘전체 수익률’이 더욱 중시된다. 매년 연기금 간 전체 수익률을 비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즉 전체 최적화 차원에서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전체의 합’을 추구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이유로 보편적 투자자(Universal Investor)로서 국민 경제와 세계 경제 전체의 성장과 안정이라는 ‘경제 시스템관리’와 긴밀하게 연관되기 마련이다. 거대 자금을 바탕으로 국내ㆍ외 다양한 투자 상품에 투자하는 만큼 연기금 전체의 수익률은 장기적으로 투자 대상이 속한 ‘경제 전체의 성장률’과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넷째,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중장기 수익률을 중시하므로 시황의 일시적 변동 보다는 시장 자체의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고 이를 위해 다른 투자자와 고객, 정책당국과 ‘연대’하고, 필요 시 각 기업에도 ‘적극적 소유자’로서 ‘능동적인 관여활동(Engagement)’을 하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

다섯째, 보편적 소유주는 중기 수익률과 더불어 사회와 경제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데, 이는 ‘외부효과(Externalities)의 내부화(Internalization)’로 구체화 된다. 즉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나 기업의 경우 이를 줄이거나 직접 비용화 하고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등 기업가치 밸류에이션을 평가하고 투자 전체에 반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편적 소유주인 국민은 ‘투자의 주체’이자 동시에 이러한 활동들의 혜택을 누리는 ‘객체이자 대상’이 된다. 내가 살고 싶은 사회와 환경, 내가 속해서 일하고 싶은 기업 문화를 본인이 납부하는 자금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보편적소유자의 투자는 이렇게 ESG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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