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에 경종을 울릴만한 판결이 나왔다. 다만, 연인 간 폭력을 더 엄격히 다뤄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
6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안동범)는 이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과의 연인관계를 알렸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하고 상해치사 협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이모 씨에 대해 7년형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징역 10년을 구형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는 지속적인 폭행 관계에 있지는 않았고 감정충돌 중 우발적으로 폭행하며 상해치사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교제살인의 일반적인 유형으로 교제를 원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 보복의 의사로 계획적인 살인 범행에 이른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고 피고인이 유족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용서받지 못한 점을 참작해 최종 형량을 결정했다”고 판시했다.
유족들은 재판부 판단에 크게 반발했다. 피해자 측은 입장문을 내고 “검찰의 낮은 구형보다 더 가벼운 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항소심 재판에서는 단순 상해치사가 아닌 살해 행위로 평가되길 바란다”며 검찰에 항소를 요청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재판부 판단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우선,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재판부는 ‘우발적인 폭행’이었다는 점을 양형기준에 감경요인으로 본 것 같은데 살인이라는 결과에 집중해야 했다”며 “연인 간 폭력을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형량과 판시로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폭력 사건 전문인 이은의 변호사는 “피해자가 폭행을 당하던 과정에서 정신을 잃었는데도 폭행하고 가해자가 즉시 조치하지 않았던 정황을 보면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판단할 여지도 충분해 보이는데 법원은 ‘반복적인 폭력이 아니고 이별통보를 받은 후가 아니니 우발적인 폭력으로 사망했다’고 판단했다”며 “사전에 치밀히 계획할 정도의 동기가 있거나 흉기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을 토대로 우발성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폭행의 정도나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후의 은폐를 위해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미필적 고의로 평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형량이 가볍지 않다며 데이트폭력의 공포와 두려움을 살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폭력 관련 익명의 한 활동가는 “지금껏 연인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은 당사자 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껏 가볍고 사소하게 봤던 데이트폭력이 얼마나 여성의 일상과 삶에 큰 공포와 두려움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 씨는 지난해 7월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로비에서 여자친구와 말다툼 중 머리와 팔 등 신체를 여러 차례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폭행 이후 이 씨는 112와 119에 전화해 ‘여자친구가 술에 취해 기절했다’는 허위신고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식을 잃은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약 3주 동안 혼수상태로 지내다 지난해 8월 17일 결국 사망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애초 이 씨에게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 씨의 도주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후 경찰은 추가 수사를 거쳐 이 씨의 혐의를 상해치사로 변경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이 씨는 지난해 10월 6일 구속상태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피해자 가족이 지난해 8월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알려졌다. 청원에는 약 53만 명이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