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조용하던 서울동부지검(심우정 지검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3년 동안 검찰 캐비넷에 묵혀뒀던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대선이 끝난 직후 꺼내든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한때 ‘친정권’으로 분류됐던 이들은 왜 현 정권에 칼을 겨누기 시작했을까.
4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최형원)를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수사가 전개되고 있다. 사건은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검찰에 산업부 등 정부부처가 전 정권 인사들의 사표 제출을 강요했다며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이 사건을 3년 동안 묻어뒀다. 법조계에서는 현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이 동부지검에서 요직을 맡으며 사건 수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는 말들이 나왔다.
동부지검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생긴 것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가 시작된 2017년부터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강요했다는 내용으로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 받은 사건이다.
동부지검이 김 전 장관을 기소하자 수사팀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한찬식 동부지검장과 주진우 부장검사는 승진 탈락과 좌천성 인사를 받았고, 이에 반발하며 사표를 냈다. 이후 동부지검은 고발이 접수된 타 부처 블랙리스트 사건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못하고 캐비넷에 묻게 됐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최초로 폭로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은 “당시 검찰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관련 사건을 수사했고 이 일로 정권이 타격을 받자 다른 수사를 모두 막았다”며 “동부지검에서 찾아낸 (정치적) 사건만 40건이 넘는데 그 중 수사가 제대로 이뤄진 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단 한 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 대검찰청 과학수사기획관이었던 심우정 검사는 서울고검 차장검사,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승진 코스를 밟았고, 지난해 6월 동부지검장이 됐다. 심우정 지검장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박범계 장관 밑에서 호흡을 맞춰온 만큼 법조계 일각에서는 그를 ‘친정권’ 인사로 평가했다.
동부지검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산업부를 시작으로 교육부, 통일부 등 다른 정부 부처 블랙리스트 의혹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부지검의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을 두고 일각에서는 ‘새 정권 코드 맞추기’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새 정부의 눈치를 보며 현 정권을 향한 정치수사가 시작됐다는 비판이다.
반면, 외압으로 수사를 막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 정부와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는 검찰 수뇌부는 소수일 뿐이고 몇 명 되지 않는다”며 “‘수사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일선 검사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그때는 위에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 출범 후 수사가 시작되면 오히려 오해를 빚을 수 있으니 정권교체 직전에 수사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봤다.
검찰 출신의 다른 변호사도 “수사와 법은 정치적으로 봐선 안 된다”며 “윗선에서 결재를 반려하고 거부하다가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면 그때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간부들이 당연히 수사해야할 사건을 묻어둔 것은 비열한 행동이지만 지금이라도 수사를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각자 살기 위한 당연한 행위”라고 평가했다.
동부지검의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는 현 정권을 겨냥한 대대적 수사의 신호탄일 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김 전 수사관은 “문재인 정권에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된 게 없기 때문에 대선 끝나고서야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이라며 “앞으로 타 부처 블랙리스트 의혹 외에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사건들이 하나씩 터질 수 있다. 무혐의 나온 것도 다시 꺼내서 재수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