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홀연히 퇴사한 IT·스타트업계 관계자는 퇴사 전 마지막 만남에서 이렇게 말했다. ‘컬처핏’(Culture-fit)이란, 직원이 기업의 조직 문화와 얼마나 잘 맞고 융화되는지를 의미하는 단어다. 최근 몇 년간 많은 IT 스타트업들이 컬처핏 면접을 따로 도입할 정도로 업계의 화두이자, 채용의 필수 요소로 떠올랐다.
컬처핏은 입사 후에도 인사 평가 등 고과에 반영된다. 일부 직원들은 컬처핏이란 단어가 비합리적이고 수직적인 의사결정에 남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조직 문화에 얼마나 융화되는지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정량적 기준보다는 정성적 평가가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무 과정에서 불합리한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너는 우리와 컬처핏이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돌아온다. 컬처핏이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며 퇴사한 그 역시 “오만 군데 이상한 것도 다 컬처핏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사실 컬처핏은 실리콘 밸리에서도 자주 쓰이는 말이다. 학벌 등 단순한 정량 스펙 평가에서 벗어나 직원이 조직과 추구하는 방향이 맞는지를 고려하는 요소다. 영미권에서는 ‘Cultural fit’이라고 하는데, 혹자는 실리콘 밸리의 단어가 한국에 들어와 ‘헬조선화’됐다고 푸념한다. 프롭테크 분야에 종사하는 한 스타트업 직원은 업계에서 남발하는 영어 단어를 보면 몇 년 전 과도한 영어 사용으로 입방아에 올랐던 ‘휴먼 보그체’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른바 ‘휴먼 스타트업체’의 탄생이다.
컬처핏 외에도 직원들의 두통을 유발하는 휴먼 스타트업체가 상당수 있다. 스타트업 대표들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에릭 리스의 저서 ‘린 스타트업’에서 비롯된 ‘린’(Lean),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따온 ‘애자일’(Agile)이 대표적이다. 각각 효율적인 경영·소프트웨어 방법론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린 하게 하자”, “애자일 한 분위기를 도입합시다” 등과 같이 주관적인 지시 사항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좋은 뜻이어도 명확하게 쓰이지 않으면 직원들의 퇴사 욕구만 높일 수 있다. ing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