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식량 안보] 자급률 20%도 무너진 한국…비상대응책 조차 없어

입력 2022-05-01 09:44 수정 2022-05-0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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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40→20% 급격한 하락…밀 0.5%·옥수수 0.7%·콩 7.5% 불과
전쟁·기후위기에 수입가격 2배 '껑충'…수출 제한 조치 잇따르자 '식량 무기화' 우려

▲러시아군 트럭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한 옥수수 재배 밭에 불에 탄 채 서 있다.  (AP뉴시스)
▲러시아군 트럭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한 옥수수 재배 밭에 불에 탄 채 서 있다. (AP뉴시스)

전쟁과 기후 위기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식량 수급 차질과 이에 따른 식량의 무기화 우려도 제기된다. 식량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자급률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져 식량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3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식량가격지수는 전월(141.4p) 대비 12.6% 상승한 159.3p를 기록했다. 관련 지수를 발표한 1996년 이후 최대치로, 2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세계의 곡창지대로 손꼽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곡물 가격지수는 전월(145.3p)보다 17.1% 상승한 170.1p를 기록했다. 밀은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수출 차질과 미국의 작황 우려 등으로 가격이 크게 올랐다. 옥수수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함께 주요 수출국인 우크라이나 수출 감소 예상으로 가격이 급등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30%, 옥수수 수출의 20%를 차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전쟁에 따라 파종 면적이 줄어들어 올해 곡물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20%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우크라이나 사태의 국제곡물 시장 영향 분석'에 따르면 밀, 옥수수, 콩의 올해 3월 선물가격은 평년 대비 각각 137.7%, 102.1%, 72.0% 상승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승세가 본격화한 지난해 3월과 비교해도 82.0%, 36.7%, 18.9%가 오른 것이다.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 비용 증가는 현실로 다가왔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입 곡물 가격이 최근 2년 동안 50%가량 상승했다. 올해 2월 수입 곡물의 1톤당 가격은 386달러로 코로나19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2020년 2월보다 47.4% 올랐다.

농경연은 "전쟁으로 인한 흑해 지역 곡물 수출량 감소 우려에 더해 주요 곡물 수출입국의 수출제한 조치도 최근 국제곡물 가격 상승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곡물 수출제한에 대한 우려는 전쟁 이전부터 감지됐다. 세계 주요 농산물 생산국들은 이미 코로나19 사태 이후부터 수출을 봉쇄하기 시작했고 전쟁 이후 제한 움직임이 기사화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현재 16개 국가가 주요 농축산물에 대해 수출금지 및 허가제 등 제한조치를 취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인도네시아가 팜유와 팜유 원유 수출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각국이 곡물 등의 수출을 통제하는 식량 무기화에 나서고 있다"며 "인도네시아의 수출 금지는 식량보호주의의 최신 사례"라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 기준 국내 곡물 수요량 2014만 톤 중 76.6%인 1611만 톤을 수입으로 충당하며 세계 7위 곡물 수입국에 오른 우리나라는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매년 자급률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곡물 가격이 오르고 주요국들이 빗장을 걸어 잠글수록 불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현황 2022'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19.3%로 조사됐다. 곡물자급률이 20% 아래로 내려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70년 국내 곡물자급률은 80.5%에 달했다. 하지만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급률은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1975년 73.0%에서 1980년에는 절반 수준인 56.0%, 이후 1995년에는 30% 아래인 29.1%까지 떨어졌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는 매년 소폭 하락하다가 결국 20% 아래까지 내려온 상황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의 자급률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2019년 기준 쌀은 92.1%의 자급률을 기록했지만 밀 0.5%, 옥수수 0.7%, 콩 6.6% 등 4대 곡물 가운데 쌀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은 지나치게 수입의존도가 높다.

자급률이 낮아질수록 식량안보 수준은 낮아졌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리서치 업체 이코노미스트 임팩트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GFSI)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식량안보지수 32위로 2012년 21위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주변국인 일본의 경우 2012년 16위에서 2021년 8위까지 그 순위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전문가들은 식량안보를 기반으로 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환 안양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은 비상시 식량안보 대책을 제도화하고 있고, 평시와 비상시를 구분해 위험 요인을 중심으로 세부적인 관련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식량안보 비상상황을 대비하는 비상 계획과 다양한 세부 대응책들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비상계획에 의거한 대응 매뉴얼이 없는 경우 정부, 농업인, 국민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위기발생 시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게 되고 결국 국가가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정부가 '식량안보' 대책을 쌀 위주로 하는데 밀, 콩 등 주요 수입곡물에도 실질적 비축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곡물 비축치를 더 마련하는 식품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기업과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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