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도입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에 대해 해외와 달리 근로자의 선택을 요구하고,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하고 있어 본래 취지에 부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19일 한국금융공학회가 ‘퇴직연금 시장의 변화에 따른 금융투자업계의 대응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주최한 산학공동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밝혔다.
남 실장은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은퇴 이후 연금소득을 국가가 기업이라는 민간을 통해 강제하는 제도로 정의된다”며 “사적연금이 아닌 준공적연금으로 인식하고 관련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강제로 징수했으면 운용에 있어서도 강제성이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국형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 근로자들이 운용 지시를 못 했을 때 디폴트옵션 상품을 미리 선택하라는 것인데, 디폴트옵션 상품에 원리금보장형이 포함돼 있어 만약 선택하지 않으면 계속 원리금보장형에 머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 실장은 “디폴트옵션의 기본 취지는 상품 선택을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분산된 포트폴리오에 투자하게 만들어 놓고 ‘옵트아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한국형 디폴트옵션이 오히려 선택을 폭을 넓혀줬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을 강요하는 게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냐는 부분이 우려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박종각 금융감독원 연금감독실장은 이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이슈로 보인다”며 “퇴직금을 잠시 보관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소비자의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제도 도입에 맞춰 금감원도 업계의 요구사항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겠다”며 “사업자 간, 사업자와 비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요소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한편 소비자 보호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디폴트옵션 시행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근로자의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신승호 근로복지공단 전문위원은 “중소기업의 근로자 성향을 분석해 보면 3~4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현재 논의되는 디폴트옵션 상품들이 대기업 근로자나 장기 투자가 가능한 사람들을 위한 상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디폴트옵션 도입 이후 금융투자업계의 과제와 제언 등을 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김현욱 미래에셋증권 이사는 “현행 디폴트옵션은 운용 관점에서 사업자가 역할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라며 “비적격 상품도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운용사 펀드와 사업자의 포트폴리오가 건전한 경쟁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 본다”고 제안했다.
또한 김 이사는 맞춤형 자산 배분을 원하는 가입자를 위한 ‘투자일임’ 허용 검토, 연령을 고려한 타깃데이트펀드(TDF) 적용과 가입자들의 자유로운 투자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내놨다.
장준호 삼성자산운용 본부장은 “적격 상품이 글로벌하게 분산된 장기 투자에 적합한 저비용의 목표 기반 투자로 유도돼야 한다”며 “인공지능(AI)을 통한 개인별 맞춤형 생애주기 전략과 인출 시기 특화된 투자전략을 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