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형벌 규정을 개선한다. 단순 행정상 의무·명령 위반행위에 대한 형벌은 과태료로 전환하고, 기존 행정제재로 충분히 입법목적 달성이 가능하면 해당 형벌을 폐지한다.
기획재정부와 법무부는 26일 오전 대구 성서산업단지 내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경제 형벌규정 개선 추진계획 및 1차 개선 과제'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개선 취지와 관련해 "그동안 우리나라의 투자 환경을 논할 때 합리적 수준을 벗어난 과도한 경제 형벌이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우리나라의 상대적 투자 매력도를 저하시킨다고 지적돼 왔다"며 "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정비되지 않은 글로벌 기준, 시대변화와 동떨어진 형벌 규정들은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도전과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로 언급돼 왔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앞으로 국민의 생명·안전 등 중요법익과 관련성이 적은 단순 행정상 의무·명령 위반행위에 대한 형벌을 과태료로 전환하는 등 비범죄화하고, 형벌 필요성이 인정될 땐 보충성·비례성 등 원칙에 의거해 합리화할 예정이다.
정부는 17개 법률의 총 32개 형벌규정을 1차 과제로 선정했다. 우선, 기존 행정제재로 충분히 입법목적 달성이 가능한 경우 해당 형벌을 폐지한다. 현행 물류시설법에 따르면, 공사시행인가 또는 변경인가를 받지 않고 물류터미널 건설 공사를 시행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정부는 이같은 형벌규제를 삭제하고, 사업정지를 통해 제재하기로 했다.
아울러 기존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식품접객업자 등 영업자가 손님을 꾀어서 끌어들이는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이 또한 형벌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허가·등록 취소, 영업정지 등의 방식으로 제재할 계획이다.
단순 행정상 의무·명령 위반인 경우 질서 위반행위로 보고 형벌을 과태료로 전환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 설립·전환 신고의무, 지주회사 사업내용 보고의무, 주식소유·채무보증현황 신고의무 등 단순 행정상 의무 위반에 대해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정부는 이를 벌금형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과태료가 부과되도록 개선할 예정이다. 또한, 벤처투자법상 사회적 신용 요건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의 대주주가 중기부 장관의 주식 처분명령을 미이행하는 경우에도 형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형벌 존치가 불가피하더라도 행정제재를 우선 부과하고, 이를 불이행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는 등 합리화를 추진한다. 하도급법상 원사업자의 내국 신용장 미개설, 대금 지급 보증의무 등을 위반할 경우 형벌 부과에 앞서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를 불이행하면 벌금형에 처한다. 아울러 대규모유통업법상 납품업자 등에게 배타적 거래를 하도록 하거나 다른 사업자와 거래를 방해한 행위에 대해서도 형벌을 부과하기 전 과징금 및 시정명령을 먼저 부과한다.
형벌의 형량도 조정한다. 현행 불공정무역조사법상 원산지 표시 대상 물품의 수출·수입 관련 위반행위 미수범을 본범에 준해 처벌하는 규정에서 기수범에 준해 처벌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미수범 처벌의 근거만 규정해 미수와 기수 간 형량을 차등화한다.
또한, 환경범죄단속법상 오염물질을 불법배출해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규정의 경우, 사망은 기존 법정형을 유지하되 상해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으로 하향한다. 동법상 오염물질을 불법배출해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상수원을 오염하는 경우 3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을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하향한다.
정부는 이번에 마련된 1차 과제의 경우 연내 법률 개정을 신속히 추진하고, 민간의 개선 수요가 큰 법률을 중심으로 2차 개선과제도 마련할 예정이다. 아울러 범부처 형벌규정 전수 검토를 통해 경제 형벌규정을 지속해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