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을 시작해 학부 때 대기업 인턴을 거쳐 벤처 초기 멤버로 몇 년을 일하다 창업을 했다. 몸담았던 조직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아마 계속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내는 것을 제일 잘했기 때문이다.
원대한 목표 달성을 위해 가열하게 달리기보다 누구와 어떻게 일하며 어떤 가치를 만들지 숙고하는 시간이 많았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지금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20년 차 대표지만 ‘사업이란 무엇인가’는 여전히 어렵고, 앞뒤 양옆 살피며 걸어온 터라 속도감 있게 달리기 원했던 동료들에게는 미안하기도 하다. 뒷걸음질 치지 않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모든 경험에서의 배움을 양분으로 삼았던 지난 여정을 돌아보니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인 흔적들이 보인다. 저마다 지향 속도나 결과와 과정에 대한 가중치가 달라서 구성원들의 합이 맞지 않을 경우 톱니바퀴가 헛돌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데,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으니 결을 맞추며 함께해 온 동료들이 고맙다.
창업가들의 번뇌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험난한 항해에서 방향키는 제대로 잡았는지 속도는 적당한지 구성원들에게 이슈는 없는지, 작고 큰 변수들을 예측하는 레이더망과 기회를 캐치하는 순발력을 가지고 있는지 늘 고민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내 판단이 맞는지 온전히 책임질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끝없이 되묻는다. 주변의 질문에 늘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과 자기검열, 나의 고민과 질문에 답해줄 누군가를 갈망하는 결핍을 안고 산다.
내 경우 ‘너무 느리지 않은지’와 ‘진짜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두 가지 고민이 큰데, 특히 작고 둥근 어항 속 금붕어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의 변화와 맥락을 보려는 연습으로 업력이 쌓이면서 꽤 눈이 좋아진 것 같다가도 문득 진짜 좋은 눈이 맞나 의심이 든다. 열심히 유리를 닦고 헤엄치지만 바깥 면은 닦을 수 없고 머리의 경험치가 쌓일수록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실체적 경험에 대한 아쉬움은 점점 더 커진다. 유리에 얼굴을 바짝 대고 눈을 크게 떠보지만 왜곡된 시야를 마주할까 걱정이다. 안전한 것 같지만 제한된 공간이라 누군가는 밖으로 튀어나가 보기도 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자칫 깨지면 어쩌나 싶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는 여과장치와 산소공급장치가 없는 작은 어항, 특히 시야를 왜곡시켜 큰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둥근 어항에 금붕어를 키우는 것을 금지했다고 하는데, 야생이 아니라 작고 큰 조직 안에서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 같다.
고민이 없는 척 지내왔지만, 이제는 조금 솔직해지고 자유로워져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뜻을 이루고자 첫발을 뗐다면 꼭 엄청난 목표를 향해 내내 숨 가쁘게 뛰지 않아도 되며, 속도전이 아니라 산책과 탐험의 여정이어도 괜찮다. 백 미터를 달려 메달을 거는 게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긴 코스의 마라톤을 여러 주자가 바통을 이어 달리며 때로는 빨리 때로는 천천히, 구간에 따라 헤엄을 치고 산을 오르는 중에 넘어지기도 하고 잠시 앉아 쉬기도 하며 여정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게임도 있다. 우리의 일이 종착점에 다다라 여정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고 조금씩 계속 가는 것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고 길이 없다면 오솔길을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여정은 절대 혼자 완주할 수 없다. 꾸준히 지속하는 힘을 믿어보자고 오늘도 숨을 고르고 각자의 보폭으로 한 발 앞으로 딛고 나가는 모두에게 고마움과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