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벨상’이라 불리는 상 중에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의해 시작되지 않은 유일한 상이 노벨경제학상이며, 이 상의 정확한 이름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국립은행의 경제학상’이다. 노벨의 의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국립은행’이라는 금융기관이 수여하는 이 상의 수상자로, 금융위기 속에서 은행을 살리고 금융시스템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경제학자들을 선정하였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자기 잇속 차리는(self-seving)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금융시스템이 현재 얼마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기에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노벨상위원회는 수상자 선정을 통하여 정치·사회적인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해당 시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나 사안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들이나 관련된 사회 및 작품활동을 한 이들을 수상자로 선정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해당 사안의 심각성과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번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수상자 선정에 대한 경제학계의 반응을 들여다보면, 현재 세계 경제에서 금융시스템의 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쟁점인가를 알 수 있다.
금융은 돈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이고, 은행은 그 금융시스템에 있어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핵심적인 플랫폼이다. 금융시스템 안에서 돈은 실물경제와 영향을 주고받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기에, 금융시장의 위기는 실물경제의 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하겠다.
현재 금융시장의 위기에 있어 코로나의 충격이 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실물경제와 상품·노동시장에 응축되어 있던 근본적인 변화의 힘이 팬데믹을 통해서 터져 나왔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급속도의 기술발전으로 응축되어 있던 잉여기술이 코로나의 충격으로 터져 나와, 코로나 초기 비대면활동과 관련된 분야의 주가가 크게 올랐었으며, 이에 따라 노동시장의 공급과 수요도 함께 움직였다. 문제는 코로나가 진정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그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원상복구의 힘과 새로운 상황으로 나아가려는 변화의 힘이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충돌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확장시켰다. 주가의 저점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저점의 기준을 잡기 어려워졌고, 우량주를 찾는 이들도 우량주를 특정하기 힘들어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시기에는 저점에 가까운 우량주를 찾아 투자를 하는 전략이 기본이라고 하지만, 그 기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승자다.’ 금융시장 투자자들 사이에 돌고 있는 웃픈(?) 농담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인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다시 한번 투자자를 승자로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들의 학술연구나 현실업적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직접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극복을 이끌어낸 당시 미 연준 의장 밴 버냉키의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전략은 더 이상 최적의 전략이 될 수 없다. 불확실성 상승과 심각한 물가상승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시장에 돈을 더 공급하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와 기관은 금융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고, 개인은 안정적인 자산관리와 투자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안정자산 투자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싶은 투자자가 있다면, 기술발전의 잠재력이 폭발하여 미래의 우량주가 될 항목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