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층을 겨냥해 은행 느낌이 전혀 나지 않으면서도 은행의 브랜드 홍보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었어요. 트렌디한 감성을 자극하는 분위기에 레트로 감성의 LP를 체험할 수 있어 2030세대에서 주로 방문하는데, 막상 여기가 우리은행과 무신사가 협업해 마련한 체험존이라고 소개하면 다들 놀라더라고요."
은행이 전통 금융업무뿐 아니라 음악을 듣거나 쇼핑까지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은행은 디지털 중심으로 무게 추를 옮기며 오프라인 영업점을 폐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대면보다 대면이 익숙한 고령층은 갈수록 줄어드는 은행 영업점을 찾아가기 위해 고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지속해서 영업점을 줄이고 있는 은행들은 비용을 줄이면서도 고객 접점을 확대할 수 있는 혁신 점포를 확대하면서 새로운 실험에 나서고 있다.
서울 마포구 무신사 테라스 홍대에는 우리은행이 지난달 혁신점포 '원 레코드'(WON RE:CORD)를 운영 중이다. '원 레코드'는 기존 은행 점포와 차별화된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 점포로 은행 업무뿐만 아니라 LP 음악도 듣고 스티커 사진도 찍는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평일에도 100여 명의 방문객이 체험활동을 즐기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300~400여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 이곳을 들어서면 아기자기하게 전시된 LP 판이 40대 이상에게는 추억의 향수를, 2030세대에게는 '신문물'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낸다.
입구에 설치된 키오스크에서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대기하면 4개의 LP 청취부스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턴테이블의 바늘이 LP판 위에 올려지면 미세한 잡음과 함께 톡톡 튀는 특유의 음색이 귀를 사로잡는다.
안쪽에는 은행 ATM기기처럼 생긴 스티커 사진 부스가 2030세대의 이목을 끈다. 이곳에선 무료로 흑백의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 옆으로는 화상상담을 통해 우리은행 금융업무를 볼 수 있는 디지털데스크도 마련됐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우리은행 상품 가입이나 개인대출 상담, 각종 변경 및 기타 업무를 전문 상담직원과 화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과의 협업을 통한 은행의 혁신 점포도 잇따라 오픈되고 있다. 우리은행은 경기 양주시 이마트에브리데이 광사동점 안에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디지털EXPRESS 광사동점'을 25일 오픈했다. 이곳에 방문하는 고객은 이마트에브리데이에서 쇼핑도 즐기고 디지털EXPRESS에서 디지털데스크와 스마트키오스크를 이용해 영업점 창구 수준의 금융 업무도 볼 수 있다. 디지털데스크에서는 화상상담 직원을 통해, 스마트키오스크는 셀프뱅킹을 통해 금융 업무가 가능하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강원도 정선에 있는 GS25고한주공점에 AI(인공지능) 은행원이 탑재된 스마트키오스크를 도입한 혁신 점포 1호를 선보였다. 이어 올해 4월 서울 광진구 GS더프레시 광진화양점을 리뉴얼해 혁신 점포 2호점을 마련했다. 이곳에는 스마트키오스크와 함께 화상상담창구인 디지털데스크가 마련됐고, 로봇 컨시어지가 고객을 맞아 직접 안내하거나 QR코드를 통해 이벤트 공지 등 업무를 한다.
7월에는 경북 경산시 GS25영대청운로점을 혁신 점포 3호점으로 개점하고 신한은행의 디지털데스크, 스마트키오스크를 설치했다. 신한은행 디지털영업부 직원과 화상상담을 통해 영업점 창구 대부분의 업무처리가 가능하다.
KB국민은행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거래가 가능한 '9 투 6 뱅크'를 운영 중이다. 직장인과 사업자 등 은행 영업시간에 은행 업무를 보기 어려운 이들이 혼잡한 시간을 피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하나은행은 폐쇄점포를 활용한 신개념 점포 '하나 톡톡 라운지'를 운영 중이다. 하나은행은 최근 지점 폐쇄에 따른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폐쇄점포를 리모델링해 은행 업무는 물론, 지역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기능까지 갖춘 공간을 마련했다. '하나 톡톡 라운지'에는 화상상담이 가능한 STM과 ATM기기를 배치해 셀프뱅킹이 가능하다. 또한, 기계에 익숙지 않은 금융소외 계층을 위해 인근 영업점 직원이 주 1회 정기적인 방문을 해 직접 금융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처럼 은행들이 혁신 점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은행업무가 비대면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대면 업무가 증가하는 상황에 기존 오프라인 영업점을 유지하기엔 소요되는 비용이 크다. 결국 은행들은 혁신 점포를 추진하거나 은행 간 공동 점포를 통해 유지비용을 줄이고 디지털 소외계층의 불편을 해소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문제는 이처럼 혁신 점포나 공동 점포 등 은행들의 시도가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에 고령층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비수도권에 점포가 줄어드는 것은 이런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4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우리·신한은행)의 점포 수는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서 줄어드는 비중이 더 큰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12월 말 4대 시중은행의 수도권 점포 수는 2416개, 2020년 12월 말 2278개, 2021년 12월 말 2123개로 줄었다. 2년 새 13.8% 줄어든 셈이다. 비수도권은 2019년 1109개, 2020년 1025개, 2021년 956개로 2년 새 16.0% 급감했다. 비수도권의 점포 수 감소 폭이 더 큰 셈이다.
이런 문제는 정무위원회 국감에서도 잇따라 지적됐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감에서 "은행 점포 폐쇄 공동절차를 시행하고 있는 게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점포 수가 지속해서 감소하자 금융당국은 소비자의 접근성과 편리성이 악화되지 않도록 지난해 3월부터 '은행 점포 폐쇄 공동절차'를 시행 중이다.
은행은 점포 폐쇄 전 사전영향평가를 수행해야 하고, 그 결과 소비자 불편이 크다고 판단되면 점포의 유지 또는 출장소 전환 등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영향평가의 내용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비수도권의 점포 폐쇄가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지역은행과 시중은행이 공동 점포를 조성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방안과 지역재투자 평가에 소외지역 점포운영 시 가점을 높이는 등 내용을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