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성의 글로벌 인사이트] 세계경제 위기 속의 한국호(號)

입력 2022-10-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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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회장, 협상학회장 역임

세계 경제가 ‘3중’ 폭풍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대외 경제 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우리 경제도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맞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곡물 및 에너지 가격의 상승과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충격의 여파로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4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연이어 자이언트스텝(0.75%)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어 기업들은 계획된 투자마저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 또한 재정 확대를 통해 소비 및 투자 침체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국가부채가 영국 총리의 최단기 퇴임 사태를 초래한 바 있다. 헝가리에서는 에너지 가격 급등에 올겨울 난방비로 소득의 20% 이상을 써야 할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디플레이션 경제인 일본에서는 오랜만의 인플레이션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금리 인상을 주저하여 엔화는 150엔대까지 추락하고 있다. 유로화, 위안화, 파운드화 등 세계 주요 통화의 대달러 환율은 끝 모를 상승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물가 또한 올 들어 3월부터 계속적으로 4%를 웃도는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금리 또한 상승 행진을 계속하여 7%를 넘기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전 세계적인 달러 강세 속에 1450원을 곧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물가-금리-환율의 세 가지 거시 변수들의 급격한 변화는 국내 채권시장을 자극하여 우량기업마저도 시장에서 물량 소화를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통하여 통화량 조이기를 진행하는 가운데 정부가 긴급히 채권시장에 개입하여 통화를 공급하였지만 국내 금융시장은 당국 간 상충되는 신호(signaling)로 인하여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실물 부문에서도 우리 수출의 2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가 시장 수요의 부족으로 단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전기차 및 배터리 시장에 대한 보조금을 자국 내 생산으로 한정하고 있어 우리의 차세대 전략산업인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곤경에 처해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아이오닉5, EV6 등 미국에 공급하고 있는 전기차는 전량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어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될 경우 성장기에 있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발판을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금융시장, 실물시장의 위기가 아직 시작 단계라는 데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기구들은 2023년에도 이러한 ‘3중’ 폭풍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과 전망 속에서 우리 경제의 시급한 과제는 금융, 거시경제 및 실물의 세 분야에 걸친 효과적인 대응방안의 마련이다. ‘안정성’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거시경제 분야에서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투자 침체를 막아야 하는데 섣부른 정책은 오히려 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크다.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가 44일 만의 최단명 총리로 물러난 것은 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음으로 금융 분야에서는 ‘변동성’(volatility)이 가장 큰 위험요소이며, 금리인상기에는 신용경색(credit crunch)의 확산을 막는 것이 우선되어야 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금융은 자금의 조달과 가계대출에 대한 비용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정부 시절 치솟는 집값 상승에 대응하여 ‘영끌’로 주택을 구입한 30~40대 MZ세대들이 대출이자 급등을 견디지 못하여 집단적 투매를 시작하고, 국내 우량기업마저도 투자를 위한 채권 발행에 실패하고 있는 상황은 미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보인다.

실물시장 또한 미국이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하여 자국 내 생산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우리 전기차와 배터리, 그리고 반도체 산업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새로운 전략의 준비를 요구받고 있다. 레고랜드 채권에 대한 지급보증 거부사태로 촉발된 혼란이 세계 경제의 ‘3중’ 폭풍 속에서 또 하나의 한보 사태로, 금융위기로 진전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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