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 우려가 확산하면서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급증하고 있다. 덩달아 강제경매 및 보증사고 건수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악성 임대인' 명단을 공개하는 법안까지 발의됐지만,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12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1월 기준 강제경매로 소유권이 이전된 전국 집합건물(아파트·빌라·오피스텔 등)은 총 517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 4413건 대비 17% 증가한 수치다. 강제경매는 임차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임차인 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법원 소송을 통해 경매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1280건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과 함께 △경기 947건 △인천 449건 등 수도권이 전체의 절반(52%)을 차지했다. 이어 △부산 367건 △경북 308건 △충남 284건 △경남 283건 △전남 214건 순이었다.
HUG가 신청한 건수만 따로 떼놓고 봐도 증가세다. 본지가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의뢰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기준 HUG가 집주인을 대상으로 신청한 빌라 및 아파트 강제경매 건수는 전체 393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303건 대비 약 30% 증가했다. 2020년(30건)과 비교하면 13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올해 기준 대상별 강제경매 건수는 아파트가 155건으로 가장 많았다. 아파트에 이어 △다세대(생활주택) 111건 △다세대 108건 △연립 12건 △주상복합 4건 △연립(생활주택) 3건 순으로 많았다.
강제경매 건수가 증가하는 이유로는 최근 집값 내림세가 짙어지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 현상이 커지고 있다는 게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서 강제경매를 신청하고 있다”며 “최근 강제경매 건수가 늘고 있는 건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깡통전세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국 아파트 및 빌라 전세가율은 계속해서 커지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10월 전국 기준 아파트 및 빌라 전세가율은 각각 73.6%, 81.9%로 집계됐다. 전달(아파트 73.3%, 빌라 81.0%) 대비 각각 0.3%포인트(p), 0.9%p 올랐다.
전세가율은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의 비율로, 전세가율이 상승하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HUG에 따르면 10월 기준 보증사고 건수는 70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달 523건 대비 35%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사고 금액도 9월 1098억727만 원에서 10월 1526억2455만 원으로 39% 증가했다.
이처럼 깡통전세 문제가 심화하자 최근에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의 명단을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하는 등 임차인 보호 강화를 위한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8일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임대인이 총액 2억 원 이상의 보증금을 변제하지 않아 HUG가 보증채무를 대신 이행하고, 이행 연도부터 과거 3년관 보증금 미반환으로 강제집행, 보전처분 등을 3회 이상 받은 임대인의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의원은 “최근 다주택자나 법인이 무자본·갭투기 방식으로 다수의 주택을 매입한 후 보증금을 제때 반환하지 못하고 잠적해 임차인의 재산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상습적으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임대인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