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법(고준위법)이 결국 해를 넘겼다. 원전 내 핵폐기물이 계속 쌓이는데도 국회에선 법안 논의조차 진행하지 않은 상태다. 고준위 방폐물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로선 난감해졌다. 정부는 내년에라도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설득에 나설 예정이다.
3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올해 안에 고준위법은 논의될 가능성이 없어졌다. 국민의힘 산자위 간사를 맡은 한무경 의원은 고준위법 논의와 관련해 "내년에 해야 할 것이다. 시간상으론 논의가 안 된다"고 밝혔다.
고준위법은 현재 김영식·이인선 국민의힘 의원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안으로 상임위 법안 소위에 계류된 상태다. 소위에서 안건으로 올라왔었지만, 법안 조율이나 공청회 진행 등은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 15일 산자위에선 윤관석 산자위원장이 고준위법을 다음 회의 때 최우선 안건으로 올린다고 했지만, 이후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산자위는 한국전력공사법 등 주요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논의만 진행했다. 고준위법은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풍력발전법 등 논의가 필요한 법안들과 함께 뒤로 밀렸다.
문제는 원전 내 핵폐기물 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역 내에선 이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중이고, 정부도 폐기물 관리를 위해 법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2분기 기준으로 월성 원전은 방폐물 저장률이 98.4%, 고리 원전은 85.9%, 한울 원전은 82.5%로 2030년이 되면 포화가 극에 달한다.
법안 통과가 절실한 정부로선 골치 아픈 상황이 됐다. 정부는 지난 7월 고준위 방폐물 관리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이행조차 하지 못했다. 부지 확보를 위한 절차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한 걸음도 못 나갔다. 이유는 고준위법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안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합의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여야 간 쟁점은 물론 여당 내에서 발의한 법안끼리도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고준위법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상태다. 법안을 발의한 김성환 의원도 나서서 법안 논의에 참여하길 꺼리는 중이다.
여야는 우선 공청회 진행 자체엔 큰 이견이 없어서 다음 달 중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은 있다. 이르면 16일 전체회의를 열고 공청회를 진행할 수도 있다. 공청회가 열린다면 소위에서 법 조항을 하나하나 논의할 수 있다.
정부는 법안 논의가 시작될 수 있도록 물밑 작업에 계속 나설 예정이다. 정부 고위급 관계자는 의원들과 직접 연락해 법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설득에 나섰다. 산업부 관계자는 "법안 통과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 공청회 진행부터 될 수 있도록 의회와 소통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