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6일 도요다 아키오(66) 사장이 4월 1일자로 퇴진하고 회장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한 지 약 2주 만인 2월 14일, 그의 부친인 도요다 쇼이치로(豊田章一郞·97) 게이단렌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며 상상해 본 것이다.
두 건의 연이은 뉴스를 두고 일본 미디어들은 즉각 도요다 아키오 게이단렌 회장 실현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게이단렌 회장 취임의 걸림돌로 여겨졌던 도요타 사장직과 자동차공업협회 회장직을 떠나면서, 도요다 사장이 그동안 거리를 두었던 게이단렌으로 활동의 축을 옮길 것이 확실시된다는 것이다. 게이단렌은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을 이끄는 창업가 출신 도요다 사장을 게이단렌 회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해 왔다. 모기업의 풍부한 자금력에다 국민적 지명도가 있는 도요다 사장인 만큼 게이단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이다렌은 지난해 6월 자동차산업의 성장 전략을 폭넓게 검토하는 ‘모빌리티 위원회’를 신설하고 그 위원장에 도요다 아키오 사장을 추대했기 때문에 “3년 뒤 차기 게이단렌 회장 인사를 예견한 움직임 아니냐”는 얘기가 무성했다. 게이단렌에는 경제재정, 사회보장, 노동문제 등 정책 분야를 논의하는 위원회가 50개 가까이 있다. 정부에 대한 제언을 정리해 재계가 목표로 하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의 핵심을 이룬다. 게이단렌에서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원장으로서 다양한 기업의 의견을 집약하는 수완은 불가결하다.
게이단렌에는 도요타 대망론이 뿌리 깊다. 관례적으로 회장의 조건으로서 제조업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 관련 산업은 약 550만 명의 고용을 거느리고 있고, 그 1위에 군림하는 도요타라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과거 도요다 쇼이치로(1994~1998), 오쿠다 히로시(奧田碩·2002~2006) 등 2명을 회장으로 배출했다.
사실상 도요타 위원회인 모빌리티 위원회에는 참가 희망 기업들이 몰리고 있다. 위원회는 대개 50~60개 정도로 구성되는데 이 위원회에는 이미 200개 이상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단렌은 차세대 교통을 핵으로 한 모빌리티 산업 창출 논의를 시작했다. 탈탄소화와 디지털화를 통한 변혁을 추진해 자율주행과 종합적인 이동서비스(MaaS) 등을 살린 성장전략을 마련 중이다. 이를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 서밋)에서 어필한다는 구상이다.
2021년 6월 제15대 회장에 오른 스미토모화학 회장 출신 도쿠라 마사카즈(十倉雅和)의 현 체제는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확립을 위해 신성장전략 5대 축을 내걸었다. 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을 통한 새로운 성장, 근로방식 개혁, 지방창생, 국제경제질서 재구축, 녹색성장 실현이다. 게이단렌은 특히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대해 “정치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상부구조와 경제라고 하는 하부구조가 연동해 영향을 주고받는 시대에, 게이단렌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협력하면서, 비즈니스의 실태를 근거로 정책을 제언하고, 실현을 촉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기시다 정권의 핵심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정부와 힘을 합쳐 세계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자세다.
1998년 작고한 최종현 전경련 회장과 거의 같은 시기에 게이단렌을 맡았던 도요다 쇼이치로 회장 때의 한일 재계협력은 그 정점에 이르렀었다. 최 회장의 장례식에서 도요다 회장은 추도사를 했다. 지금 윤석열 정권에서 한일 관계는 해빙무드다. 양국 경제와 재계 협력에 기대가 부쩍 커지고 있다.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그 나라 정치의 동반자다. 또 다른 재계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와 일본상공회의소는 정책의 수혜자다. 전경련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재계의 총본산이다. 23일 전경련이 정기총회를 열어 후임 회장을 선출한다고 한다. 추락한 전경련을 살리려면 그 책임이 있는 정치와 재계가 진실된 마음으로 손잡고 복원하는 길밖에 없다. 일본 정부와 게이단렌의 심모원려(深謀遠慮)에서 답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