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부가 상담을 받겠다고 찾아왔다.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이고, 남편은 회사원이었다. 초등학교 동창 사이란다. 부인이 ‘초딩’ 시절 짝사랑했던 남편을 성장해서 다시 찾았단다. 20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결혼까지 한 방에 밀어붙였단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부터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눈치가 부족한 남편이 육아하느라 힘든 부인 마음을 몰라주면서 종종 짜증이 났단다. 그런데 단순한 짜증이 답답한 실망으로 바뀌면서, 남편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남편에게 물건을 던지고 때리기까지 했다.
“남편분 행동 중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뭐죠?”
“그런 거 없어요. 하나도 마음에 안 들어요.”
“음… 그러면 조금이라도 덜 미운 부분은요?”
“딱 하나 있어요. 잔소리하니까, 음식물 쓰레기를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버려주더라고요.”
옳거니! 나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단언컨대, 남편분께선 사모님을 사랑하십니다.”
“아닌 것 같은데요?”
“아뇨, 잘 들어 보세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쓰레기 버리는 방법은 단순한 습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 성격이고, 존재 그 자체죠. 어쩌면 가장 바꾸기 힘든 부분이랍니다. 그런데, 남편분께서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방식을 사모님이 선호하시는 방식으로 바꾸셨다면서요? 그렇다면, 틀림 없습니다. 사모님을 사랑하십니다.”
“그런…가요?”
놀랍게도, 내가 이렇게 말한 후부터 두 사람 사이가 급격하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부인은 온갖 동물 이름이 등장하던 욕을 그만두었고, 남편에게서 덜 미운 구석을 좀 더 찾아내기 시작했다. 손이라도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던 부인이 남편 손을 잡고 상담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말이 그렇게나 설득력이 강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부인은 남편이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간절히 원해서 욕을 했으리라. 남편도 방법을 구체적으로 몰랐을 뿐, 아내에게 관심이 많았으리라.
때때로 사랑은 입이 없다. 그래서 말을 못한다. 하지만 함께 작은 구멍을 뚫어 입을 만들면 소통이 일어나면서 관심과 애정이 되살아날 수 있다. 감사하다며 인사하고 돌아서던 두 사람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부부 귀에 걸린 웃음이 참 보기 좋다.
(※위 사례는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각색했습니다.)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