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이모티콘 없이 웃거나 울 수 있나요

입력 2023-03-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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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과학칼럼니스트

2년 동안 아이와 함께했던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과 눈물로 이별했다. 흔히 ‘라포가 잘 형성되었다’고 말하지 않나. 그간 아이와, 그리고 필자와 원활히 소통하고 감정을 교류해왔던 분이다. 아기가 말을 못하던 시절에도 선생님 얼굴을 보면 방긋 웃으며 반갑게 팔다리를 흔들었다. 말을 시작한 후 선생님 얘기가 나오면 아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선생님은 예뻐”, “선생님을 좋아해”라고 표현했다.

그간 필자는 선생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마스크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영유아들을 상대하는 일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을 터. 그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함께 버텨내며 매우 감사했다는 마음을 선생님에게 전하고 싶었다. 커다란 편지지를 골라 펜을 들었다. 하지만 글로 먹고산다는 말이 겸연쩍게 편지에 필자의 마음을 절절히 담는 것이 어려웠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자꾸만 무언가 한계에 부딪혔다. 차라리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티콘 사용이 감정 표현에 영향

이유는 그거였다. 격식을 차려 손으로 쓰는 편지에는 ‘이모티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기쁘면 웃는 얼굴을, 속상한 얘기를 하면서 우는 얼굴을, 감동받은 얘기를 하면서 눈물이 고여 있는 얼굴을 문장 끝에 붙였다. 격식을 차린 이메일에도 마지막 줄에 쓰는 감사인사 끝에는 가볍게 웃는 표정(:D)을 넣었다. 하지만 손 편지에까지 웃는 얼굴, 눈물이 고인 얼굴을 직접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필자만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일에 익숙해진 것은 아니다. 친구에게 받은 손 편지나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도 손으로 그린 이모티콘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이모티콘이 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졌다는 뜻이다. 이모티콘 사용이 감정 표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3일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즈 인 심리학’에 실린 연구 결과에도 나타났다.

일본 도쿄대 융합정보연구과 연구팀은 온라인 소통이 일상화됨에 따라 사람들이 이모티콘을 이용한 의사소통에 적응했다며, 특히 이모티콘이 부정적 감정 표현을 줄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런 온라인 습관이 오히려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팀은 이모티콘을 이용하는 사용자 1289명을 대상으로 이모티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조사했다.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또는 이와 반대로 감정을 숨기는지 알아본 것이다.

긍정적 감정 표현할 때 더 많이 사용그 결과 참가자들은 친한 친구와 대화할 때, 또는 사적인 상황에서 이모티콘을 가장 많이 썼고,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어려운 사람에게는 가장 적게 썼다. 재미있는 사실은 참가자들이 기쁠 때, 감사할 때처럼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이모티콘을 많이 썼지만 화남,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이모티콘은 그런 감정이 매우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에만 썼다는 점이다.

사용자들은 대개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도 그 감정을 가리기 위해 웃는 이모티콘을 썼다. 연구자는 기쁜 감정을 표현하는 상황에서는 자기의 진짜 감정을 굳이 가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이모티콘으로 기쁜 감정을 표현할 때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훨씬 행복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연구를 이끈 류모유 박사는 “온라인 소통이 일상화하면서 온라인 환경에 적합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일상화했다”며 “오히려 우리가 진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이 연구에도 한계는 있다. 연구팀이 조사한 이모티콘은 주로 젊은 세대의 여성이 많이 사용한다. 또한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부정적인 감정은 감추도록 교육받는다. 류 박사는 “남성과 여성에 따라, 세대에 따라, 또한 문화에 따라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빈도와 자주 쓰는 이모티콘이 다를 수 있다”며 “향후 더 넓은 범위에서 이모티콘 일상화가 감정 표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시간 가까이 머릿속으로 생각과 씨름한 끝에 드디어 이모티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손 편지를 완성했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구겨질까 조심스레 봉투에 넣어서 어린이집 가방에 넣었다. 아이를 데리러 간 저녁, 편지글을 읽어보았다는 선생님은 촉촉한 눈동자와 툭 치면 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으로 “감동받았어요”라고 말했다. 굳이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절절히 표현하지 않았어도, 요즘 흔히 받아볼 수 없는 손 편지가 필자의 마음을 전한 것이리라. 디지털 사회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법이 진한 감정을 전달해 주었다.

참고자료 | 논문 Are you really smiling? Display rules for emojis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emotion management and psychological well-being

‘Frontiers in Psychology’ 2023년 3월 3일자

https://doi.org/10.3389/fpsyg.2023.103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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