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 말 못한 분노

입력 2023-04-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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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

수년 전, 대학생 커플을 만나 상담한 적이 있다. 남학생은 친절하고 정중했다. 실제 관계에서도 그렇단다. 그래서 여학생이 좋아한단다. 한데 여학생이 힘들어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학생 때문에 남학생이 힘들어했다.

여학생은 분노가 많았다. 평소에 작은 일에도 짜증을 많이 내고, 남학생이 지극정성으로 대하는데도 너무 막무가내였다. 특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금방 임계치를 넘어서 바로 폭발해 버리는 여자 친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학생은 분노를 조절하거나 통제하지 못했다.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다소 폭력적이었다. 언젠가 하굣길에 두 사람이 싸우게 되었단다. 그런데 너무 심각하게 싸워서 주변에서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학생만 만나기 시작했다. 깊은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함께 조금씩 탐색했다. 뿌리가 금세 드러났다. 어릴 적 엄마가 일하시느라 나가실 때마다 단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을 뱉었다. “남친은 제가 화를 잘 낸다고 말하지만, 사실 전 참을 때가 훨씬 더 많아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하고픈 말을 참았다가, 저를 받아주는 남친에게 쏟아낼 뿐이고요.” 매우 역설적인 말이었다.

결국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연습이 필요했다.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내 감정을 의심하고 심지어 억압하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적는 과제를 내주었다.

여학생은 별것 아닌 이 과제를 놀라울 정도로 성실하게 수행했다. 두 달 동안 매일 밤마다 자기 감정을 직면했다. 그리고 느낀 그대로 수용했다. 말하자면, 자기를 안아주는 연습을 했다. 엄마 대신 자기가 자신을 안아준 셈이다.

여학생은 두 달 만에 눈부시게 변했다. 변하겠다는 본인 의지가 워낙 강했다. 사소한 장면에서 느낀 사소한 감정도 그냥 넘기지 않고 인정하면서 진심으로 자기를 정서적으로 안아 주기 시작했다. 타인에게도 솔직히 말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상담 시간에 남자 친구 손을 잡고 밝게 웃으면서 걸어 들어온 그녀는 나에게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열어 보니, 스스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씌어 있었다. 난 웃으며 말했다. “아뇨, 스스로 해내셨어요.”

(※위 사례는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각색한 내용입니다.)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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