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키려 ‘푸른방패’ 엠블럼 부착
유네스코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종교 건축물 70곳, 역사적 건물 30곳, 문화적 장소 18곳, 기념물 15곳, 박물관 12곳, 도서관 7곳 등 모두 152곳의 우크라이나 문화유적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이들 훼손된 문화유적 대다수가 수도 키이우 북부 하르키우, 동부 도네츠크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모두 현재 전쟁이 진행 중인 지역이다. 그중 동부 하리코프는 국립오페라발레극장, 하르키우 미술관, 드로비츠키 홀로크스 기념관 등 18곳이 훼손돼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유네스코는 파괴된 건물 중에는 1000년이 넘은 11세기 이전의 유적지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키이우의 성소피아 성당과 수도원인 페체르스크 라브라의 안전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이 두 건물은 러시아 정교회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이자 우크라이나 대표 관광지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옮기기 힘든 거리의 동상이나 기념물은 모래주머니로 감싸고,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는 지하실로 이동시키는 등 문화유산을 지켜내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시민들도 동상 주변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박물관 창문에 금속판을 설치하고, 예술작품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등 문화유산 지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문화유산에 ‘푸른방패(Blue Shield International/국제푸른방패)’ 엠블럼을 부착하는 등 러시아군이 식별할 수 있는 표식을 남기는 문화재 보존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푸른방패 표식은 전쟁으로 인한 문화유산의 훼손과 파괴를 방지하고자 ‘무력 충돌 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약’(1954)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이 표식이 붙은 지역은 국제법상 포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유네스코는 키이우를 비롯해 ‘리비우 역사지구’ 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 표식을 우선적으로 부착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사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훼손한 유적지 중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없다. 다만 체르니히우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유적지가 있다.
문화유산 공격은 국제법상 전쟁범죄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를 떠나서, 한 나라의 문화유산을 고의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1954년 헤이그 협약에 따라 전쟁범죄로 간주된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기반을 파괴하는 전술의 일환으로 유적지가 공격 대상이 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오드리 아줄레이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문화유산에 대한 반복적인 공격을 중단할 것과 모든 형태의 문화유산은 어떤 경우에도 표적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 인도주의법, 특히 무력 충돌 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헤이그 협약을 존중할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 파괴된 문화유산의 명단 정보는 전쟁 범죄 증거로 사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유산을 목표로 공격하는 행위는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된다. 물론 러시아가 문화유산을 표적으로 삼은 건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가 점령지 도서관에서 역사 교과서를 압수해 불태우는 행위를 미루어 짐작건대 ‘우크라이나 정체성 지우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무게감을 갖는다. 물론 이번 전쟁으로 파괴된 문화재와 그 손해는 종전 후에 배상처리 항목 중 하나로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돈으로 다 해결되진 않는다.
문화재란 독일어로 ‘Kulturguter(영어의 Cultural Properties)’,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민족문화의 유산을 말한다. 문화재는 정신적 가치와 시각적, 음향적으로 표현하는 심미적 가치가 독특하고 주체성을 보존하는 중요한 매체이기 때문에 해당 문화재를 창조해낸 민족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중요하다. 문화재는 넓은 의미에서 인종적 또는 국민적인 체질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포괄해서 요즘에는 문화재라는 말보다는 ‘문화유산’이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 전쟁이 조속히 종료되어, 한번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인 소중한 문화유산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고 온전히 그 모습을 지켜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