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對EU 투자 견제 나서
보호주의적 경제안보 정책으로
글로벌 리더십 잃을까 주목돼
2010년대 이후 미중 간 갈등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정치, 안보를 넘어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중 갈등이 첨예화하는 가운데, 양국은 제3국과의 경쟁적 연계 전략을 펼쳐왔다. 중국은 21세기를 맞이하며 미국 패권의 본질을 연구하는 데 집중했다. 중국은 미국의 패권이 단순히 국가 차원의 정치안보, 경제적 힘을 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만드는 힘이라 파악했다. 미국은 국가들을 규합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참가할 ‘뜻이 같은 국가(like-minded countries)’들을 집합하며, 해당 네트워크에서 구심적 역할을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게임체인저인 미국의 패권에 대응하기 위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일대일로’는 중국이 낙후된 서부 지역을 개발하며 이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및 유럽까지 확대하는 대규모 개발전략이다. 실크로드 재건으로 지칭되는 ‘일대일로’ 사업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육로와 해로로 연결함으로써 미국의 네트워크를 단절시키고자 하는 중국의 대외국책사업이다. ‘일대일로’ 전략은 중국이 당면한 경제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함과 동시에, 중국 중심의 유라시아 정치경제권을 형성한다는 전략적 함의가 담겨 있다.
‘일대일로’ 사업이 진척됨에 따라 몇 가지 문제도 발생했다. 참여한 국가가 대규모 개발사업에 돈을 대느라 경제위기를 겪기도 했다. 게다가 육로로는 아프가니스탄, 이란, 시리아 등 지역과 해로로는 인접 국가와의 갈등이 높은 남중국해, 해적이 끊이지 않는 예멘-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 등을 연결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막강한 중국 정부의 자본력을 토대로 추진되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은 동남아시아, 일부 중동부 유럽 및 아프리카 지역 등에서 유효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일대일로’ 참여국이 부채의 덫에 빠진다는 국제사회 비판에 직면한 중국은 작년 아프리카 국가들의 일부 빚을 탕감해 주는 선심성 정책을 통해 팽창 전략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확산되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역외보조금 논란이 본격화했다. 제3국을 우회해 공여된다는 그 특성상 역외보조금은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및 상계조치에 관한 협정(보조금협정)’상의 보조금 정의를 벗어나 관련 규율의 직접적인 적용이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에 2021년 미국-유럽연합(EU)-일본은 산업보조금을 규제하기 위해 WTO 보조금 협정 개정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WTO 164개 전체 회원국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으며, 협약 참가국에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이후 EU는은 2020년 역외보조금에 관한 백서를 발표했으며,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2023년 1월 관련 법안 역외보조금 규제를 발효시켰다. 해당 규제는 오는 7월 1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대(對)EU 투자가 광범위하게 증가해 왔음을 지적해다.
EU의 역외보조금 규제는 역외 정부나 공공기관의 재정적 기여로 인한 혜택이 발생하고, 이의 혜택이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제공될 때 제재 대상이 됨을 명시했다. 특히 EU 역내 기업과의 결합 혹은 공공조달에 참여하고자 하는 역외 기업은 사전신고를 진행해야 하며, 집행위원회는 이런 과정에서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1집행위원회는 사전신고가 필요 없던 소규모의 기업 결합 및 공공조달 분야에 대한 조사가 가능하며, 역내 급습조사는 물론 역외국 정부의 동의하에 제3국 현장조사도 시행 가능하게 된 것이다.
EU는 2020년부터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open strategic autonomy)’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제시해 왔다. 그간 EU는 지정학적 안정과 글로벌 리더로서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의 기조를 통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 자세를 견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미중 경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코로나 팬데믹 현상으로 인해 지경학적 불안정이 고조됨에 따라, EU는 보호주의적이며 경쟁적 차원의 규제 및 지침을 잇따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역외보조금 규제는 분명 유럽의 매력적인 공동시장에 불공정한 형태의 제3국 기업 진입을 걸러낸다는 단기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다만 환경, 노동 등 규범 분야에서 일관된 전략을 펼침으로써, 소프트 파워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EU가 최근 쏟아지는 보호주의 성격의 경제안보 정책으로 인해 중장기적인 글로벌 리더십을 잃지 않도록 신중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