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법서 준용…시정조치엔 조항 없어
분할하기 전 회사가 지급하지 않은 하도급 대금을 신설법인에게 대신 물어내라고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HD현대중공업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시정명령 등 취소를 구한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다고 9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2015년 1~2월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로부터 발전소 엔진에 들어가는 실린더헤드 108개를 납품 받았지만, 2억5600만 원 상당의 물품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엔진에 냉각수 누수 문제가 발생했는데, 원인을 찾아보니 납품 받은 실린더헤드에 있었던 것.
하자 책임 소재를 두고 양자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던 중에 현대중공업은 2019년 6월 물적 분할해 존속법인 ‘한국조선해양’과 신설법인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으로 나뉘어졌다. 2020년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이 옛 현대중공업의 권리‧의무를 승계했다며 재발방지 명령과 함께 지연이자 등을 포함한 미지급 대금 약 4억5000만 원에 대한 지급을 명하는 시정조치를 취했다.
공정위 시정조치에 불복한 HD현대중공업은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등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했다. 재판에서는 분할 전 회사의 하도급 대금 미지급을 이유로 신설회사에게 시정명령 등을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원고 ‘HD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원심 재판부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신설회사에 대해 분할하는 회사의 분할 전 법 위반행위를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2007년‧2009년‧2011년 일관되게 판시한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삼았다.
원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은 공정위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 공정위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은 과징금 부과 처분에 관해 신설회사에게 제재 사유를 승계시키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규정을 준용하고 있으나, 시정조치에 관해서는 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현행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이 회사 분할 전 법 위반행위에 관하여 신설회사에게 과징금 부과 또는 시정조치의 제재 사유를 승계시킬 수 있는 경우를 따로 규정하고 있는 이상, 그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는 이 사건 사안, 즉 회사 분할 전 법 위반행위에 관하여 신설회사에게 시정조치의 제재 사유가 승계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 사안에서는 이를 소극적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