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삼성전자 국내 사업장에 들렀을 때입니다.
이 회사 사업장 대부분이 그렇듯, 규모가 꽤 방대합니다. 사업장 안과 밖을 겹겹이 막아선, 철옹성 같은 울타리를 넘어설 때마다 바깥 세상과 전혀 다른 삼성만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는 하지요.
이들 사업장에는 규모 만큼이나 많은 임직원이 근무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안쪽은 흡사 작은 도시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사업장 곳곳에 제법 규모가 있는 쇼핑몰이 있습니다. 임직원과 협력사ㆍ방문객을 위한 곳이지요.
이곳에 들어서 보니 아이스크림ㆍ티(Tea) 전문점 인기가 꽤 높더군요. 퇴근 무렵에는 베이커리 전문점이 붐볐습니다. 많은 삼성 아빠와 삼성 엄마들이 한 손에 서류 가방, 다른 한 손에 빵과 케이크를 든 봉지를 들고 회사 앞 퇴근 버스로 발길을 옮기기도 합니다.
“아! 여기 쇼핑몰은 이런 작은 매장이라도 매출이 꽤 되겠는데요?”
제법 손님들로 북적이던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바라보며 무심코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안내를 맡았던 삼성 직원의 대답은 순간 기자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네 그렇죠. 그런데요. 저는 여기 매출 더 많이 올랐으면 좋겠어요. 미망인들께서 하시는 건데…”
네 맞습니다.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다가, 혹은 국내 사업장에서 근무하던 중 안타깝게 별세한 임직원 유족에게 삼성 측에서 일부 매장의 사업권을 넘겨준 것이지요.
삼성뿐 아니라 재계 주요기업 대부분이 유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직원이 근무 중 사망했을 경우 직계 가족 가운데 1명을 '특별채용'하는 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뜨거웠던 젊음을 회사에서 보낸 이들에게 회사 차원에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복지, 아니 ‘예우’인 셈이지요.
그렇게 떠난 삼성 직원들은 한 가족의 삶을 책임져왔던 가장이자 누군가의 남편, 아빠였습니다. 이런 예우는 떠나간 삼성 아빠를 대신해 회사가 남아있는 부인과 자녀에게 건네준 마지막 '동아줄'이기도 합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궤를 지닌 '줄'도 있습니다. 바로 기아 노사 단체협약에 담긴 ‘장기근속 자녀의 우선 채용’입니다.
기아 노사는 직원 자녀의 우선 채용을 단체협상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직원의 자녀를 우선으로 채용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 퇴직자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 자녀가 우선 채용 대상입니다.
정부는 이 조항 가운데 장기근속자 자녀의 우선 채용을 불법으로 판단했습니다. 균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한 헌법과 고용정책기본법을 위반한 사례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난해부터 회사에 이 단체 협상 사항의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기아, 엄밀히 따져 기아 노조의 시정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용노동부는 이 사안과 관련해 지난 4월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기아와 기아 대표이사를 입건했습니다. 뒤이어 노조 지회장에 대해 출석 요구를 하면서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지요.
이에 반해 기아 노조의 입장은 강경합니다. “단체협약 개정에 관한 사항은 절차와 과정에 따라 진행한다는 태도를 수차례 밝혔다”라는 게 이들의 공식입장입니다. 여기에 “우선 채용 관련 조항은 이미 사문화한 조항이고, 수십 년간 적용사례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아 노조의 입장도 백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이 회사 생산직의 인기가 높았던 만큼, 이 단체협상 사항에 대한 사회적 공분도 적지 않습니다.
매년 '춘투' 때마다 회사의 불합리함과 부당함을 강조하는 조합원께 묻겠습니다. "그렇게 안 좋은 회사라면서 왜 굳이 당신 자식은 입사 시키려고 노력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