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서 수년을 보내던 그녀는, 한국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고,임신을 하여 결혼하게 되었다. 곧 건강한 사내 아이를 낳아 단란한 가족을 이루게 되었다.
십여년 후, 그녀는 처음으로 내 진료실을 방문하였다. “한국은 젊은이에게는 참 천국같은 곳이었어요.” “네….” “그러나아이를 낳고, 키우기에는 너무 지옥 같은 곳이에요.” “네?” “여기에선 항상 다른 집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지지 않기 위한 육아 전쟁을 하는 것 같아요. 왜 우리 애가 키가 더 작지? 저집 애는 영어를 어떻게 해서 잘 할까? 우리 애가 셈이 느린 것 같은데? 학부모들 모임은 친목 모임이 아니라 ,상대를 견제하고 정보를 빼내기 위한 외교 무대 같아요.” “여기서 결혼해 육아를 하던 친구들이 이런 문화에 지쳐서, 미국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아요.” “저도 두 자녀를 둔 아빠인데, 정말 공감이 됩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남편도 정말 불쌍해요. 끊임없이 신세 한탄을 해요. 자기는 루저고, 실패했다고요. 경차에 빌라에 사는 자신의 모습이….” 그녀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따스한 내 집이 있고, 차도 있고, 하루 세끼 밥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요? 왜 다른 삶과 비교를 하며 불행하다는 거죠?”
어느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움이었다. 그녀에게 나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게 치부란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슬픈 자화상을 밝은 조명에 비춰 본 것이다. 나는 눈부심을 피해, 잠시 창 밖으로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