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갈등의 화약고’가 된 홍해

입력 2024-03-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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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후티반군이 홍해로 지나가는 상선을 공격하면서 지구 경제에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홍해는 세계 해상 교역량의 12%를 차지한다. 미·영 연합군이 반군의 거점을 때리지만 완전한 소탕은 어렵다. 2011년 최영함이 여기서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했다. 당시 해적들은 개인용 화기를 지녔지만 지금 반군들은 미사일과 드론으로 무장하고 있다. 홍해를 우회하는 아프리카 남단 항로가 있지만 시간과 연료비가 많이 든다.

15세기 오스만 튀르크가 지중해를 지배하자 서유럽 상인들도 신항로를 찾아 나섰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서부 해안을 따라 희망봉을 지나는 인도항로를 개척했고 스페인은 폭포처럼 떨어질지도 모르는 대서양을 나침판 하나 믿고 나아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앉아서 세상 보는 망원경 ‘구글 지도’

이제 온 지구가 탐사되어 새 항로가 있을 수 없지만 답답하여 구글 지도를 펼쳐본다. 구글 지도는 앉아 세상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인데 운이 좋으면 고대 유물을 발굴할 수도 있다. 마우스로 중동으로 이동하고 확대하면 쪼개진 틈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온 홍해를 볼 수 있다. 후티 반군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좁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빠져나오면 아덴만 그리고 인도양이 나온다.

미사일을 피해 고개를 아프리카 해안으로 돌리면 푹 내려앉은 지대가 보인다. 아프리카 동부 열곡대인데 열에 의해 쪼개지는 계곡이다. 계곡을 쭉 따라가면 빅토리아, 말라위 호수에 이른다. 아프리카 열곡대도 판구조론으로 설명된다. 판구조론은 현대 과학의 위대한 발견으로 지구는 아프리카판, 유라시아판 등 6개의 대형판과 소규모 판으로 덮여있다. 판들이 충돌하여 산맥이 만들어지고 판들이 쪼개지면서 해협이 생성되기도 한다. 아프리카 열곡대는 아프리카판이 자체적으로 쪼개지면서 생긴 균열대이다. 쪼개지는 힘은 지구 내부에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열이다.

아프리카 열곡대는 인류가 탄생한 고향이다. 원래 이 지역은 열대우림이었지만 열곡대가 만들어지면서 열곡대 주변 땅이 융기했고 열대 사바나 초원지대로 바뀌었다. 나무를 타던 침팬지는 초원에서 직립보행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진화했다. 최근 열곡대에 위치한 케냐는 지열발전소를 세웠다. 열곡대에는 3km보다 얕은 1km만 뚫어도 뜨거운 열을 뽑아 쓸 수 있다. 우리나라 발전소 기술자도 여기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아프리카 열곡대는 1년에 1cm 정도 벌어지므로 배가 다니려면 몇 만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남의 대륙을 언급하는 짓이 주제넘지만, 이 균열이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균열의 원동력인 우라늄양이 초기 지구에 비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중심에 쌓이는 고체가 냉각의 직접 증거이다. 약해지는 지구 자기장과 이동하는 지자극도 또 다른 증거이다. 지구 자기장은 지구 내부의 대류로 인해 발생하므로 자기장의 변화는 대류의 변화를 의미한다.

지구 내부의 대류뿐만 아니라 인간이 개입하는 지열발전소도 아프리카 열곡대 균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2017년 지열발전소 영향으로 포항지진이 발생했듯이 지열발전소에서 뽑아내는 열은 땅속의 응력을 완화시키면서 미세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 작은 충격을 빈빈하게 가하면 파괴적인 열곡대의 균열은 더디게 진행된다.

우리 기술자·선원 보호 위해 파병 검토할 만

우리나라 경제가 중동과 함께 발전했고 아직도 적잖은 근로자들이 나가 있다. 필자도 UAE 원전에 한 달간 엔지니어링 업무를 한 적이 있다. 주중에 마신 사막 먼지를 주말에 100km 달려가 김치찌개로 씻었다. 항해하는 선원들도 홍해 어느 항구에서 맛볼 라면에 미사일 위험을 감내하고 있을지 모른다.

UAE 건설 현장에는 모스크의 종소리를 들으며 교회 사무실로 드나들었다. 다양한 인종들이 부딪치는 건설현장에는 종교의 관용이나 무관심이 있다. 그러나 건설현장을 벗어나면 2000년 묵은 종교 갈등을 풀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아프리카 열곡대를 찾지만 갈등의 우회로가 되기까지 긴 세월이 걸린다. 파견 기술자와 선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군을 파병하고 경항공모함을 정박시키고 싶다. 국가 위상에 걸맞게 국제문제에 관심을 지닐 때 홍해의 우회로가 열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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