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소위 금융권 ‘방탄 유리’를 뚫은 한 여성 리더는 과거와 현재의 ‘벽’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 직장 내 존재했던 커피타기, 청소하기, 주요 보직 배제 등 여성 차별적인 관행들은 없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로 인해 일정 직급 이상으로의 승진은 더 어려워졌다는 게 요지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채용 과정과 승진 시험, 업무 배분 등이 남녀 동일한 조건으로 이뤄진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만 있으면 어디든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유리천장이 투명해진 만큼 소득 불평등, 여성에 대한 회사 구성원들의 시각, 불공평한 육아와 가사 분담으로 인한 어려움을 꼬집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회사에서 남녀가 평등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으니 육아 같은 사적인 영역은 개인이 당연하게 감수해야 할 문제가 돼버렸다. 예컨대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을 여전히 느낀다. 최근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들도 많아졌지만 아직도 대부분 여성의 몫이다. 육휴 후 복귀하더라도 부서에서 기피 대상이 되기 일쑤다. 육아로 인해 연차를 쓰는 일이 잦으면 남은 팀원에게 그 일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여성 리더들을 인터뷰해보면 직장 내 여성의 역할은 크게 바뀌었다는 데 동조한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문제들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서는 국가의 도움은 물론 가정에서의 조율, 남편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조언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12년 연속 선진국 29개국 중 일하는 여성에게 가장 가혹한 국가로 꼽혔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여성이 다른 선진국 여성보다 심각한 소득 불평등을 겪고 있고 사회적 권한 역시 작다고 설명했다.
겉으로 보기엔 동일한 조건이라지만 일한 만큼 남녀간 연봉 격차도 크다. 지난해 4대 은행의 남성 평균 연봉(1억3375만 원)이 여성(1억125만 원)보다 3250만 원이나 많았다. 사람들은 “그래도 예전보다 여성이 일하기 좋아졌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 수치와 ‘요즘 사람’의 얘길 들어보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