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원을 훌쩍 넘을 비만치료제 시장이 개화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노다지 캐기에 나섰다. 노보 노디스크가 시장을 먼저 장악한 가운데 ‘위고비’의 아성을 깨려는 기업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는 지난해에만 313억4300만 크로네(약 6조2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공급 부족으로 미국과 덴마크, 영국,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만 출시했음에도 연매출 100억 달러가 넘는 메가 블록버스터 진입을 앞두고 있다.
위고비는 임상을 통해 68주간 투약 시 평균 14.9%의 체중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초기에는 주 1회 0.25㎎으로 투약을 시작해 16주 동안 유지용량인 주 1회 2.4㎎까지 단계적으로 증량한다. 매일 맞아야 하는 노보 노디스크의 기존 비만치료제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에 비해 투약 편의성을 대폭 개선한 것이 장점이다.
위고비 등장에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은 2030년까지 1000억 달러(약 136조 원) 규모로 성장이 예고됐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노보 노디스크의 독주를 더는 두고 볼 수만 없는 대목이다.
현재 위고비의 대항마는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다.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와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분비 폴리펩타이드(GIP) 수용체를 모두 표적하는 이중 작용 기전 치료제다. 위고비와 마찬가지로 당뇨병 치료제로 ‘마운자로’로 먼저 출시됐고, 역시 주 1회 주사로 투약한다.
젭바운드는 임상에서 평균 20.9%의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해 위고비보다 높은 효능을 확인했다. 88주 투약하면 체중이 26% 감소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후발주자인 젭바운드는 위고비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빠르게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올해 3월 젭바운드 신규 처방은 7만7590건으로 위고비(7만1000건)를 처음 앞질렀다.
젭바운드의 선전에 힘입은 일라이릴리는 임상 3상 단계인 먹는 비만약 ‘오르포글리프론’의 생산능력 강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오르포글리프론은 임상 2상에서 36주 동안 14.7%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의 경쟁 속에 암젠은 월 1회 주사제로 차별화에 나섰다. 임상 2상을 진행 중인 ‘마리타이드’의 중간 분석 결과가 “고무적”이라고 최근 밝히면서 연내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마리타이드는 GLP-1 수용체를 활성화하지만, 젭바운드와 반대로 GIP 호르몬의 수용체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임상 1상에서는 21㎎ 투약 시 평균 체중이 29일째 2.4% 줄고, 최고 용량인 840㎎을 투약하면 92일째 9.2% 줄어 단회 투여만으로도 체중 감소 효과가 장기간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중국 바이오기업 에코진의 ‘ECC5004’를 20억 달러(약 2조6000억 원)에 도입했다. GLP-1 수용체 작용제인 ECC5004는 1일 1회 먹는 약이란 점이 특징이다. 미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로슈도 미국의 바이오기업 카모트테라퓨틱스를 27억 달러(약 3조5000억 원)에 인수하며 비만치료제 개발에 동참했다. 1999년 지방흡수억제제 ‘제니칼’을 개발했지만, 부작용 이슈로 성공하지 못했던 로슈는 카모트 인수로 GLP-1 계열 후보물질을 확보했다. 해당 후보물질은 임상 2b상에서 투약 24주차에 위약군 대비 18.8%의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글로벌 빅파마도 시행착오는 있다. 화이자는 하루 2회 먹는 비만치료제 ‘다누글리프론’의 임상을 지난해 12월 중단했다. 체중감소 효과는 나타났지만, 높은 이상반응 발생률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화이자는 1일 1회 제제로 방향을 틀어 재도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