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타 폐지', 부작용 걱정하는 현장…“정부 입맛대로” 또 다른 카르텔 우려

입력 2024-06-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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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예타폐지, 투자확충 "지시…연구현장 "예타 폐지 아닌, 개선 원했다"
과학기술계 "예산구조문제 악화…또 다른 카르텔 조장 가능성 우려"

“국민 혈세가 쓰이는 연구개발(R&D)에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의 판단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대통령과 정부의 입김대로 사업이 선정될 거란 우려를 지울 수 없다.”

4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관계자 A 씨는 ‘R&D 예타 전면 폐지’에 대해 “예타 폐지가 아닌 개선을 바랐는데 갑자기 예타가 전면 폐지된 것에서 지난해 R&D 예산 삭감이 겹쳐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성장의 토대인 R&D 예타를 전면 폐지하고, 투자 규모를 대폭 확충하라”고 지시하면서 3일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에서 예타 폐지를 최종 의결했다.

◇R&D 예타 폐지 염원한 연구자는 누구 = 대통령실은 ‘현장 연구자의 오랜 염원’이 예타 전면 폐지 추진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헛발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다른 출연연 관계자 B 씨는 “연구개발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게 맞냐는 의문은 있었어도, 예타가 폐지되길 염원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바랐던 예타 제도 개선은 적합한 전문가를 투입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란 설명이다. B 씨는 이어 “연구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연구비 걱정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정옥상 부산대 화학과 교수는 “R&D 예타 폐지는 일반적인 기본 연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면서 “정작 현장에서는 연구비 삭감으로 탈락된 과제가 많은 게 걱정인데, 이는 현장을 달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식 정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접수된 예타 요구 사업 51개는 전체 약 1만 개 연구의 0.5%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주장하는 R&D 예타 폐지의 혜택은 0.5%의 대규모 사업에만 적용되는 셈이다.

현장에서는 제도 추진에 있어서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관게자는 “R&D 예타 전면 폐지가 능사가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현장연구자, 전문가그룹의 참여와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R&D 예타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타 폐지, R&D 예산 구조 문제 악화할 수도=예타 전면 폐지는 R&D 예산 구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예타는 우리나라 R&D 예산 책정의 가장 큰 문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탑다운 방식과 부처 칸막이에 따른 중복과제 범람 등을 막기 위해 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면서 “그러나 현재까지도 이 문제들은 해결이 되지 않고 있고, 심지어 예산 삭감으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예타를 폐지해버리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되면 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 3대 게임체인저 기술 이니셔티브 등에 모든 부처가 매달릴 수 있다”며 “이는 곧 정부가 3대 게임체인저 기술을 신속히 통과하기 위해 예타를 폐지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입맛대로”…또 다른 카르텔 조장하는 예타 폐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8년부터 기획재정부로부터 R&D 예타 제도 운영을 위탁 운영하고 있지만 예타 제도가 폐지될 경우 기재부의 권한이 막강해지면서 정부의 국정과제에 부합하지 않거나 기재부의 입맛에 맞지 않은 사업의 경우 배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계에서는 예타 폐지로 인해 생긴 공백으로 또 다른 카르텔이 조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류광준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지출한도를 결정하는 최종 결정권은 기획재정부에 있기 때문에 기획재정부나 혁신본부에 그 지출한도의 확대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설명을 해야 될 것이고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다”며 “(지출한도가 적은 부처의 경우) 기획재정부에서 지출한도에 대해 어느 정도 결정을 변경해 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출 한도가 적은 부처일수록 결정권이 있는 기재부에 줄을 설 수밖에 없다는 설명으로 해석된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예산 우선 편성 방식으로 예타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기재부의 논리는 예산 편성이 편성권자인 기재부의 권한에 달려있다는 뜻”이라며 “많은 연구자들이 과학기술혁신본부 보다는 기재부에 줄을 서게 될 것이고 기재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자들에게 아무런 제약 없이 예산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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