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없으면 우리 아이는 영원히 조직검사를 못 받는 건가요?”
환자들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진료 정상화와 정부의 조속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를 비롯해 92개 환자단체가 참여했다. 이은영 한국백혈병환우회 공동대표는 “이 정도로 많은 환자단체가 한 뜻으로 참여한 기자회견은 전례가 없었다”라며 “그만큼 환자들이 몇 달씩 불안에 떨며 지쳐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서이슬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는 희귀·난치병이 있는 자녀가 치료를 위한 사전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했다.
서 대표는 “우리 아이가 앓는 희소혈관질환은 써볼 수 있는 임상 중인 약물이 단 하나 있는데, 이 약물을 치료목적으로 사용하는 병원이 국내 단 한 곳이다”라며 “약물을 쓰기 위해 선행해야 하는 조직검사가 전공의들의 부재로 4월에서 6월, 다시 8월로 미뤄졌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 큰 병원에서 전공의가 없어서 조직검사를 못 한다니 말이 되느냐”라며 “국내에서 전국에 단 1곳, 2명의 의사가 그 약물의 치료목적사용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지역의 희소질환 전문 병원에 찾아가도 ‘그냥 서울 병원 가서 진행하라’라는 답변만 돌아오고, 비수도권에 사는 환우회 회원들은 모두 서울 소재 병원으로 찾아가야 한다”라며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는 영영 조직검사를 못 받는 거냐”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환자가 드물고 귀한 질병을 희귀질환이라고 부르는데, 의사들이 진심으로 환자를 귀하다고 생각했다면 이럴 수는 없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으로 발언대에 선 곽점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대표는 “유방암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 항암은 6번, 방사선은 30번 정도 받아야 하는데, 지금 환자들이 이걸 받지 못하고 불안에 떨어야 한다”라며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환자를 팽개치는 정부와 의사는 필요 없다”라고 날을 세웠다.
곽 대표는 “의사도 당신들의 가족 중에 환자가 있지 않냐”라며 “유방암 환자였던 나는 지금도 암 환자를 위해 전국에 13개 지부를 설립하고 활동비도 받지 않으며 사비를 쓰고 있는데,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휴진하고 환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환자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 추진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는 2000명씩 1만 명을 늘려야 한다며 숫자에만 초점을 맞추고,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 주장만 반복한다”라며 “‘왜’가 빠져 있는 것은 정부나 의사들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대학병원 가운데 처음으로 전면 휴진을 예고한 서울대병원 교수들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들은 그간 곳곳에서 현장을 지켜준 의사들을 위해 말을 아끼고 있었다”라며 “이번 서울대병원 비대위가 전면 휴진을 발표하며 환자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환자 중심 병원이라는 설립 취지를 내세우는 한국 대표 공공병원이자 국립대병원이 무기한 휴진을 선포하고, 그 피해는 중증·희귀질환자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할 수 있는가”라고 유감을 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환자단체들은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와 대한의사협회의 무기한 전면 휴진 철회를 촉구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현재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는 진료지원인력을 합법화하고, 법적 지위를 보장해 의료환경을 안정화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국회에는 의료인의 집단행동 시 필수의료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입법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현재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7일, 대한의사협회는 18일 전면휴진을 예고했다. 연세의대 교수들은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단행하기로 했으며, 울산의대, 가톨릭의대, 성균관의대도 휴진에 동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절차를 중단하고,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내렸던 각종 처분을 완전히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