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 알리고 예술 반열에 올려
삶·죽음 순환서 ‘느림의 미학’ 추구
다양한 매체활용 시각이미지 창조
백남준의 조수였고, 또 백남준 이후 비디오아트의 거장이라고 불렸던 빌 비올라(Bill Viola)가 향년 73세의 나이로 이달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자택에서 별세했다. 조기 발병한 알츠하이머의 합병증이 사인이다.
백남준이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라면, 비올라는 비디오아트를 대중에 널리 알리고, 예술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비올라는 백남준과 같은 당시 유명 작가들의 전시 설치를 도왔는데 1974년 시작된 백남준과의 인연은 1979년까지 이어졌다. 비올라는 백남준이 ‘과달카날 레퀴엠’(1977)을 제작할 때 촬영을 담당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에서의 전시로 꽤나 친숙한 국제적 작가이다.
그는 40년 넘게 삶과 죽음에 대한 원초적 질문과 감정·의식 등을 주제로 한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200점의 작품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왔다. 1983년 뉴욕현대미술관, 1997년 휘트니 미술관, 2003년 폴 게티 미술관, 2004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2006년 일본 모리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1995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70세가 넘은 빌 비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왕성하게 활동을 하던 중 합병증으로 영면했다.
비올라는 1951년 미국 뉴욕 퀸즈에서 태어나 웨스트베리에서 자랐다. 그의 유년기에 잊지 못할 기억이 있는데 6세 때 익사할 뻔한 순간이 그것이다. 그후 성인이 된 비올라는 푸르고 녹색 빛의 물속이 아름다웠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의 작품에 물이 자주 등장하는 건 이 유년의 기억과도 맞닿아 있다. 1970년대 비올라의 초기 작업은 비디오라는 매체가 가진 예술적 가능성을 꾸준히 실험하며, 예술 장르로 개척함과 동시에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와 본질적인 존재 구조’를 탐구했다. 초기작 중 하나인 ‘투영하는 연못’(1977~1979) 작품에서는 숲에서 걸어 나와 물웅덩이 앞에 선 남자가 물을 향해 뛰어들려고 힘차게 도약하는 일순간에 화면이 멈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세히 보면 남자를 제외한 주변 풍경은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시간을 물질로 파악하고,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담긴 작품이다.
1980년에는 일·미 문화교류 펠로십을 통해 다나카 다이엔 선사와 함께 불교를 공부했다. 이 기간에 비올라는 소니 아쓰기 연구소의 상주 예술가이기도 했다. 일본에서의 선(禪) 수행은 비올라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비올라는 이때의 경험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여러 차례 다양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회고했다. 1980년대에 비올라는 ‘나는 내가 무엇 같은지 모른다’(1986)를 통해 죽은 들소나 생선이 썩어가고 이를 다른 생물이 뜯어먹는 과정을 통해 죽음과 생명의 순환을 다룬다.
이미 생과 사를 인지하던 그였지만, 더 큰 변화의 계기가 찾아온다. 바로 1990년 겪게 되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이의 탄생이다. 비올라는 어머니의 임종과 아이의 탄생을 비디오에 담아 ‘통과하다’(1991)라는 작품으로 발표한다. 그는 죽음과 삶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는 곧 작품 세계에도 반영된다. 바로 그를 대표하는 ‘느림의 미학’이 탄생한 것이다.
비올라는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1990년대 이후부터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에 슬로 모션을 사용하거나 되감기 기법을 적용해 시간을 확장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짧은 기록은 보통 10분 내외의 길이로 늘어난다. ‘인사’(1995)는 비올라가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참여해 발표한 작품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폰토르모의 ‘방문’(1528~1529)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두 명의 여자가 서로 대화하는 중에 갑자기 한 명의 여자가 더 끼어든다.
이 작품은 고정된 카메라로 45초간 촬영된 영상을 10분 22초 길이로 매우 느리게 재생해 보여준다. 느린 속도로 보면 가운데 있는 여성이 다른 여성의 등장으로 극도의 소외를 겪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비올라는 시간의 구조를 일부러 변형시킨 느림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인간 존재를 바라보게 한다.
영국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 의뢰로 비올라는 200만 달러(약 22억 원)를 들여 제작한 ‘순교자(흙, 공기, 불, 물)’ 시리즈 4점을 2014년 5월 영구 설치했다. 대성당에 영구 설치된 이 작품은 불, 공기, 물, 흙의 네 가지 원소를 통해 순교자들의 희생과 영적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유럽의 교회에서 다빈치·렘브란트·카라바조 등 뛰어난 예술가에게 성화 제작을 주문했던 오랜 역사를 잇는 방식이었다.
세인트폴 성당은 최소 10년 이상의 회의를 거쳐 비올라의 작품 설치를 결정했다고 한다. 전통 회화가 아닌 비디오아트, 그것도 비올라를 선택했다는 점은 비올라가 그 당시 이미 살아있는 거장이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비디오아트를 하는 많은 예술가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채택하고 있지만, 비올라는 디지털 편집에 거의 의존하지 않았다. 세련되고 능숙하게 뉴미디어와 기술을 다루고 있지만, 그에게 기술은 그저 작가 본인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도구일 따름이다.
비올라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작품에 빠져들게 하며, 미처 인식하지 못한 섬세하고도 미묘한 감정 변화 그리고 생각을 하게 한다. 긴 세월을 비올라의 작품 세계를 연구한 세계적인 큐레이터 제롬 뇌트르는 “비올라는 지난 40여 년간 3가지 형이상학적 질문과 싸워왔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둘째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셋째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비올라는 종이 대신 영상으로 시를 쓰는 시인처럼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답할지는 관람객들의 몫이다.
빌 비올라의 작품은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와 초월적 경험을 탐구하며, 다양한 매체와 기술을 활용해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창조해왔다. 비올라는 국내 전시로 내한했을 때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미디어아트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요한 것은 미래보다 우리가 현재 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잘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가히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다.
백남준의 대를 잇는 비디오아트의 거장 비올라의 사후 또 어떤 새로운 작가가 다음 계보를 이어갈지 기대가 된다.
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