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 '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건의안을 의결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당초 예상과 달리 재의요구 재가를 서두르지 않고 행사 시점을 다음 주로 미룰 전망이다. 야당이 강행 처리한 전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등 또 다른 법안과 함께 국회에 일괄로 돌려보낼 가능성이 점쳐진다.
6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방송 4법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재가를 당일에 하는 경우가 있고, 안 하는 경우가 있는데 꼭 오늘 재가까지 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재가는 조금 여유있게 할 수 있다"며 미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거부권 행사에 대해 속도 조절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당초 방송4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은 이날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뒤 윤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전자결재를 통해 재가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미루는 것은 방송4법을 비롯해 25만원 지원법, 노란봉투법 등 거부권 수순을 밟게 될 법안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반복되는 거부권 행사가 자칫 대통령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있다는 해석이다.
이에 윤 대통령이 다음주께 방송4법과 전국민 25만원 지원법, 노란봉투법을 일괄로 처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난달 30일 정부로 이송된 방송4법은 14일까지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 25만원 지원법과 노란봉투법은 전날 정부로 이송된 만큼 처리 시한은 20일까지로 시간적인 여유가 더 있다. 대통령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이날부터 15일 이내에 이를 공포하거나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
야당이 강행 처리한 방송 4법은 MBC·KBS·EBS 등 공영방송의 이사 수를 확대하고, 이사 추천권을 언론·방송 학회와 관련 직능단체에 부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난달 30일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뒤 정부로 이송돼 이날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됐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해당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야당은 재의요구 당시 지적된 문제점들을 전혀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고 오히려 공영방송 사장의 해임을 제한하는 규정을 추가해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임명권을 더욱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또 "방통위 의사정족수를 4인 이상으로 강화하게 되면, 야당 측 2인의 불출석만으로도 회의 개최가 불가능해져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방통위의 기능이 마비될 소지가 크다"며 "이는 정부 행정권의 본질을 중대하게 침해해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야당은 임명된 지 불과 이틀밖에 되지 않은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해 방통위의 정상적인 기능을 멈춰 세웠다"며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상황이자 국민께 면목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이번 개정안들은 공영방송의 변화와 개혁을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그간 누적돼 온 공영방송의 편향성 등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방송4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해당 법안은 국회로 돌아가 재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지난 21대 국회처럼 또다시 폐기 수순에 놓일 수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야당 주도로 국회 문턱을 넘은 6개 법안에 대해 모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2년 임기 동안 모두 21건의 법안을 거부하게 된다.